의학의 풍경
의학의 풍경
  • 최정호
  • 승인 2018.11.29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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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의학의 시작

 이곳에 글을 쓰기 시작한 지 3년이 넘었다. 그동안 여러 분야에 대한 나의 관심사를 쓰곤 했는데 이제 내가 상대적으로 잘 알고, 경험하고, 직업으로 삼은 의업의 에피소드를 포함하여 의학의 발생과 후퇴, 등 의학이 걸어온 길을 비춰줄 ‘풍경’을 그려 내고자 한다.

 어느 나라 어느 시절에나 의사라는 직업은 일정부분 비난의 대상이 되곤 했다. 요즈음에는 비의료인에 의한 ‘대리수술’이 이슈가 되어 돈벌이에 몰두한 의료인의 비양심, 불법성이 여론의 도마 위에 놓여 있다. 영국의 속담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 나는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산다. 그리고 집에 오면 그 약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왜냐하면 의사도 돈 벌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고 나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의사의 직업에 대하여 이처럼 간략하게 핵심을 찌르는 해학적 풍자도 찾아보기 어렵다. 의사와 의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인간의 욕망과 몰염치가 개입된 의사와 병원들의 탐욕스런 영업 행위와 인간의 영혼이 거주하는 신체의 건강을 보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성스러운 ‘의학’은 다른 것이다.

 황제내경은 병이 귀신에 의해 야기되는 무속적 믿음을 거부하고 식이요법, 생활습관, 감정, 환경을 병의 원인으로 규정하였다. 인간을 소우주라 간주하고 우주를 지배하는 음양오행의 원리를 이해하고 이를 소우주에 적용함으로써 신체의 균형을 회복하고 건강을 지킬 수 있게 한다는 생각은 정확히 지구 반대편의 히포크라테스 사상과 일치한다. 다른 것이 있다면 중국은 우주의 원리를 음양오행으로 파악했고, 지중해 유역의 이오니아에서는 수지화풍(물, 흙, 불, 바람)을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로 생각하고 이를 소우주인 인간에게 적용하였다.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고 경외하며, 이를 해석하고 재구성하는 방법이 동서양에서 비슷한 맥락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으로 채워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달리 말하면 결론이 뻔한 이야기이다. 염제 신농을 이어 삼황의 마지막 황제 헌원은 사람들에게 집 짓는 법과 옷 짜는 법을 가르쳤으며 수레를 발명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중국인의 시조인 황제가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황제내경을 지은이라 알려졌다. 우리의 조상격인 치우천황이 이 황제 헌원에게 패하여 항복했다는 것이 중국인이 지어낸 각본이다. 어쨌든 문명이 시작되는 여명에 의학도 함께 등장한다. 그러나 선사시대에도 개두술이나 치료흔적이 있는 유골이 발견되어 인류의 시작과 함께 의학도 시작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아폴론과 코로니스라는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스클레피오스는 (사실은 화가 난 아폴론이 코로니스를 죽였는데 곧 후회하고 그녀의 몸에 있던 아들을 꺼내어) 현자 켄타우로스 케이론에게 양육이 되었는데 케이론에게 의술을 배운 아스클레피오스는 뛰어난 의사가 되었다고 한다. 죽은 사람도 살려내어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가 제우스에게 장사가 안된다고 하소연을 해서 벼락을 내려 죽였다고 한다. 아스클레피오스는 두 명의 아들과 5명의 딸을 두었는데 모든 의사들은 그들의 후손이라 자청했다. 마카온과 포달레이리오스라는 이름을 가진 두 아들은 트로이 전쟁에 그리스 연합군으로 참전하였다. 마카온은 그 전쟁에서 죽었고, 포달레이리오스는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다. 히포크라테스는 코스 섬에 기반을 둔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손이다. 이때 바다 건너 대륙 쪽에는 크니도스가 있었는데 이곳에도 일군의 의사들이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손임을 내세웠다. 고대 페리클레스 시대로 추정되는 이 시기에 그리스에서는 코스학파와 크니도스학파가 질병과 건강의 치료 원칙을 두고 치열한 경쟁 관계에 있었다. 질병의 원인을 치료해야 한다는 크니도스 학파와 전체적인 건강회복 즉 신체의 균형과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는 코스파의 논쟁에서 우리는 우리가 아는 코스학파의 히포크라테스가 승리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고대세계에는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에 신체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요양소가 성업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관점은 수천 년이 지난 지금에도 현존한다. 인체 전체를 보지 않고 병소만 보면 근본적인 치료가 안된다고 주장하는 의사들은 옛날의 코스 학파의 주장을 따라하는 것이다. 과학 혁명기를 지나면서 서구에서는 인체와 질환을 분석하고 치료할 능력을 조금씩 축적해 오고 있었다. 19세기 초가 되면 이제 전인적 치료를 주장하던 코스학파의 주장은 질병의 병소를 치료해야 한다는 크니도스학파에게 밀린다. 그러나 약 100여 년의 분석적, 영역적 의학은 다시 전인적 치료의학의 필요성을 소환하고 있다. 결국은 인간 자체의 구원이 목적이므로 의학은 그 목적의 달성을 위해 현실적 대안을 끊임없이 찾아가야만 한다.

 최정호<대자인병원 성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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