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정치, 세련되고 품격 있게 할 수 없을까
말과 정치, 세련되고 품격 있게 할 수 없을까
  • 송일섭
  • 승인 2018.11.29 1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권을 들여다보면 온통 극단의 혐오와 분열을 부추기는 말들이 넘쳐난다. 화난 표정으로 품격 없는 말을 쏟아내면서 서로를 비난하는 모습을 보면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 그들이 국민들과 소통하겠다고 즐겨 쓰는 SNS도 마찬가지다. 여과되지 않는 거친 말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데 정신이 없다. 대체적으로 큰소리나 거친 말은 구린 속이 있는 사람들이 즐겨 쓰는 언사다. 당당하거나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항상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말투로 사용한다.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정치판의 막말은 대부분 자신의 뜻대로 안 될 때 부리는 억지다.

여의도에서는 걸핏하면 핏대를 세우고 고성을 지른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장면이다. 세상이 다 변했는데도 정치는 요지부동 변하지 않았다. 그런 싸움은 대부분 국민을 위한 싸움이 아니다. 정파의 얄팍한 셈법이기도 하고, 어느 경우는 극히 개인적이기도 한다. 지난번 국가기관 신뢰도 평가에서 국회가 꼴찌를 차지한 일을 우연이 아니다. 고성과 막말로 혐오와 분노를 양산하여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에 기인한다. 입만 열만 ‘국민’의 대표라고 하지만, 어떤 국민도 정치인들에게 막말과 고성으로 정치판을 회화화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여의도 정가에는 아직도 조선시대쯤의 시대인식에 머물러 있는 느낌이다. 오히려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맞받아치는 공무원들이 더 신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만 모르는 것 같다.

막말, 무엇이 문제인가. 첫째는 사태의 본질 파악에 장애가 된다. 대부분의 막말은 자신의 극단적 감정표현일 뿐 문제를 파악하거나 해결책을 찾는 데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켜 엉뚱한 것에 관심을 갖게 한다. 막말이 막말을 낳으면서 본말이 전도되어 버린다. 둘째는 혐오와 분노를 양산하고 확산한다는 점이다. 거친 막말은 자신의 혐오와 분노의 감정표현일 뿐이다. 그래서 문제의 핵심을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볼 수 없게 만든다. 그것이 자신에게서 그치는 것이 많은 국민들로 하여금 따라 배우게 한다는 것이다. 셋째, 지도자로서 품격과 신뢰를 잃게 된다. 지금까지 세상의 역사를 보라. 설화(舌禍)를 자주 불러온 사람치고 오래 가는 사람이 없었다.

한 정객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정치에서도 품격 있는 말을 강조했다. 당연하다. 정치라는 게 일상적인 삶이 연장 아닌가. 그래서 일상의 언어생활에는 배려, 존중, 공존, 평등 같은 민주적 가치가 담겨야 하듯이 정치인의 말도 그래야 한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 갚는다”는 말처럼 진부한 이야기도 없다. 그러나 이 말처럼 유효한 말도 없다. 우리는 삶속에서 말 한 마디로 다정한 친구가 되기도 하고, 패가 갈라지기도 한다. 정치가의 따뜻하고 진실한 말 한 마디는 바로 표(지지)로 연결되기도 하고, 잘못 건넨 한 마디 때문에 사람들이 등을 돌리기도 한다.

수도 없이 쏟아지는 정치가들의 막말 퍼레이드, 신문과 방송, 유튜브에서는 그때마다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들은 끄덕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막말을 통해 구설수에 오르도록 하거나, 화젯거리를 만들어서 국민적 관심을 집중시키려고 하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을 염두에 두는지는 모르나 필자가 보기에는 참으로 어리석고 안타까운 일이다. 격한 감정과 언어로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미처 생각해 내지 못한 바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성숙한 대화를 하여야 한다. 상대방의 것보다 자신의 것이 더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잘 설명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대화하듯 하는 정치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은 품격 있는 언어 구사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물론 그들도 친구들끼리 만나면 소주 한 잔 하면서 우스갯소리도 할 수 있고 정감 넘치는 사투리도 쓸 수 있다. 때로는 비속어로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적 장소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할 때는 달라야 한다. 표준말을 써야 하고 사투리나 비속어, 외래어 등은 쓰지 않아야 한다. 최근 모 의원이 부정적 의미가 담긴 일본어를 세 차례나 연속 사용함으로써 입방아에 오른 적이 있다. 필자는 그 의원이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말을 썼는지는 잘 모른다. 단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국회에서 특별히 일본말을 자주 써서 여론의 비난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만 기억하게 되었다.

말의 품격이 어찌 정치만의 일이겠는가.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말 한 마디 때문에 사이가 틀어진 사람들을 자주 본다. 항차 이렇거늘 국민이라는 대수가 지켜보는 정치판에서의 말은 얼마나 중요할까. 파당과 갈등을 조장하는 말, 혐오와 분노를 일으키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반대와 비난만 있는 정치는 좋은 정치가 아니다. 정파가 다르더라도 잘 한 것은 잘했다고 칭찬할 수 있어야 하고, 같은 정파라도 잘못에 대해서는 예리하게 시비를 가릴 수 있어야 한다. 반대를 위한 반대, 자기가 하는 것은 다 옳다는 극단적 자기중심주의는 보고 싶지 않다. 정치, 그것은 특별히 딴 세상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생활과 같은 정치, 이웃이나 친구들의 관계처럼 서로 배려하고 존경함으로써 함께 하는 공존과 평화의 정치를 보고 싶다.

 송일섭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