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한 논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한 논쟁
  • 최성태
  • 승인 2018.11.28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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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국토교통부는 최근 발생한 BMW 자동차 화재사건을 계기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懲罰的 損害賠償制度)를 포함한 자동차 리콜 대응방안을 발표했다. 자동차 결함을 은폐·축소한 자동차회사에 매출액의 3%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하는 규정을 신설하고, 정부가 제작 결함조사에 착수할 경우 제작사의 자료제출을 의무화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아울러 자동차관리법 개정을 통해 실제 손해액의 5~10배에 이르는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고, 현 BMW 자동차 화재사건에 소급적용 여부도 검토하겠다고 한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가해자의 악의적·반사회적 불법행위에 대하여 실제 손해액 보다 훨씬 많은 금액의 배상을 통해 유사행위의 재발을 억제하려는 제도로 영미의 판례를 통해 형성되었다. 피해자가 실제 입은 손해를 배상하는 전보적(보상적) 손해배상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찬성하는 측에서는 전보적 손해배상만으로는 피해자 구제에 미흡하고, 고액의 배상으로 가해자를 제재함으로써 유사한 형태의 불법행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징벌적 손해배상을 반대하는 측에서는 불법행위자로 하여금 피해자의 실제 피해보다 더 큰 배상을 인정하는 것은 손해배상의 기본원리에 반하고, 손해보전을 넘는 징벌적 제재금이 피해자에게 귀속되어야 할 합리적 근거가 없으며, 고액의 배상을 기대한 남소(濫訴)와 배상액 증가로 인한 기업활동 위축 등을 논거로 들고 있다. 그 외에도 영미법(英美法)에서 유래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실손해배상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 우리의 대륙법(大陸法)체계와 맞지 않다거나 헌법상 적법절차원칙과 이중처벌금지원칙에 위반된다는 법이론적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찬반론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2011년 하도급법을 시작으로 대리점법, 개인정보보호법, 제조물책임법 등 9개의 개별법이 실제 발생한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모든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에 적용될 수 있는 ‘징벌적 배상법’의 입법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더욱이 징벌적 손해배상의 액수를 10배 수준으로 강화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고,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발암물질 생리대 사건, BMW 자동차 화재사건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이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거부할 수 없는 시류(時流)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위와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피해구제를 위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필요하다면 그 실효성 담보를 위해 해결해야 할 몇 가지 과제가 있다.

 먼저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되는 분야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가이다. 모든 불법행위 전반에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환경피해나 소비자피해가 예상되는 분야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할 것인지, 기업과 소비자 간의 분쟁에만 적용할 것인지 아니면 기업 간(특히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도 적용할 것인지 등에 대해 충분히 논의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배상액의 범위를 결정하는 문제이다. 현재 징벌적 손해배상이 도입된 우리나라의 개별법은 실제 손해액의 3배 이내에서 배상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3배배상제도; treble damages). 만약 배상액을 10배 정도로 확대한다면 위화력을 높여 악의적인 불법행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반면 과잉 제재로써 위헌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배상액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한편 민사배심제도가 도입되어 있지 않고 사법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결정을 법관의 재량에만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현재 형사재판에서 대법원의 양형기준에 따라 선고형이 결정되고, 가정법원의 양육비산정기준이 양육비 결정의 가이드라인이 되고 있는 것처럼 법원은 배상액 산정에 관한 자문위원회 등을 구성해 배상액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규정한 개별법이 이미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해당 규정을 적용해 손해배상액을 인정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이유도 아마 이러한 노력의 부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위와 같은 과제의 해결을 위한 충분한 고민과 우리 실정에 대한 분석이 없는 상황에서 외국의 입법례를 차용하여 만든 법률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피해자 구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요행을 바라는 것이다.

 최성태<전주농협·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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