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선거, 진실은 불편해도 밝혀내야 한다
총장 선거, 진실은 불편해도 밝혀내야 한다
  • 김창곤
  • 승인 2018.11.27 18: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남대나 경북대에서라면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전북대가 총장 선거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선거 후 4주가 지났으나 구성원끼리 갈라져 깊은 파열음을 내고 있다. 재신임을 얻는 데 실패한 현 총장은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를 후보로 지지한 교수들은 탄식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성명과 기자회견으로 경찰관 선거 개입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더니 교수회 간부 등 3명을 26일 검찰에 고발했다. 허위사실 공표 및 후보자 비방, 명예 훼손 등 혐의를 속히 수사, 처벌해달라는 고발이었다.

 경쟁 후보들은 입을 모아 현 총장을 흠집 내면서 그의 여러 사업을 ‘적폐’로 내몰았다. ‘단임 약속’ 파기에 따른 응보(應報)라 해도 도를 넘었다는 여론이었다. 선거전은 중반 이후 엉뚱하게 총장에 대한 경찰 내사 진위 공방의 수렁에 빠져버렸다. 내사를 시사하는 경찰관 문자 메시지가 그의 명함과 함께 SNS로 유포되면서 시작된 공방이다. 후보들과 교수회 간부 등 일부 교수까지 가담하면서 공방은 ‘선거의 블랙홀’이 됐다. 현 총장을 막판까지 ‘도덕성 시비의 프레임’에 가뒀다는 게 지지자들의 견해다.

 대학 총장 직선은 1980년대 후반 처음 도입된 뒤 많은 병폐를 드러내면서 6년 전 간선으로 바뀌었다. 직선은 민주와 자율을 기치로 올해 복원됐으나 어떤 보완도 없이 선거 참여 기반만 넓혔다. 추상적이고 달콤한 공약들에 네거티브와 담합, 편 가르기가 여전히 난무했다. 후보 사이 주고받는 공방만 매서워졌다. 한 자리를 향한 후보들의 격돌에서 여유와 품위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교육과 연구의 길에 매진하며 대학 발전을 위해 응집시켜야 할 구성원 열정을 갈등과 분노로 소진시켰다.

 대학 총장을 직선으로 뽑아야 하느냐는 물음은 여전히 논쟁거리다. 대학에 위기가 몰려오고 있지만, 이곳 선거는 인기와 인맥에 의해 가름된다. 민주주의는 그 가동 원리인 다수결이 가장 큰 함정이다. 근·현대 정착 과정에서 인류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했다. 다수의 광기로 소수를 짓밟아 피로 물들이는 혁명과 전체주의를 불러들인 것이다. 개인에게 양도할 수 없는 인권을 선물해 준 자유주의는 그래서 서구 바깥 대부분 지역에서 민주주의와 쉽게 짝을 이루지 못했다. 자유 민주주의는 오랜 진통 끝에 번영과 시민사회를 이룩한 곳에서만 실현되고 있다.

 민주주의가 대통령 직선을 앞세워 도입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이 나라는 갈 길이 멀다. 짧은 기간 피땀 어린 노력으로 번영을 이룬 이 땅의 대중에게 민주주의가 또 다른 기적을 불러올 것이란 기대는 환상에 그쳤다. 이익 집단과 정치 군중이 목청을 높여 몰려다닌다. 민주주의에 소박하고 품위 있는 개인의 삶, 공동체 번영을 동반하려면 시민들은 더 긴장해야 한다. ‘집단 지성’을 말하며 무책임한 이론과 가설을 과학과 사실에 앞세우는 나라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돼 있다’는 속담은 레닌이 즐겨 썼지만, 사람들은 정작 그의 선의부터 경계해야 했다.

 제18대 전북대 총장 선거는 대학 구성원들을 갈등의 늪으로 빠뜨리면서 외부 개입을 불러들였다. 민주 선거가 대학 발전을 견인할 것이란 기대를 건 사람은 사실 많지 않았다. 그러나 구성원 누구도 이런 수모까진 예견하지 못했다.

 현 총장 지지자들은 수사를 통해 알고 싶은 게 많다. 총장에 대한 내사가 있었다면 왜 하필 선거전 복판에서 진행됐는가. 총장에게 씌워진 혐의는 무엇인가. 지역 경찰이 모르는 혐의를 어떻게 경찰청 경감은 포착했는가. 내사 공표는 경찰 규칙에 어긋나는데 어찌 흘러나와 어떤 경위로 확산했는가. 내사가 왜 선거 이후 없던 일이 됐는가. 누군가가 내사 진위 공방을 기획하고 연출하지는 않았는가.

 교수 40명이 조사해달라는 허위사실 유포나 비방은 그 허위성과 목적이 입증돼야 성립한다. 검찰은 표현의 자유, 알 권리 등과도 견주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선거 과정은 반드시 복기(復碁)돼야 한다는 게 고발자들의 주장이다. 선거 결과 승복과는 별도로 대학은 미래를 위해 시련과 수모를 견뎌내야 할 것이다. 공짜는 없다.

 김창곤<전북대 초빙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