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을 들어 교사의 허가를 받아라”
“오른손을 들어 교사의 허가를 받아라”
  • 정은균
  • 승인 2018.11.22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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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균의 학교뎐 16]

“오른손을 들어 교사의 허가를 받아라”

일제 강점기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규정한 심득(心得)은 조선 학생을 규율 신체를 가진 식민 노예로 만드는 일등 공신이었다. 경성사범학교의 방대한 규정집인 《경성사범학교총람》을 보면 학생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관리할 수 있는 규정과 규칙들이 학칙(규칙)-일반 규정-각 부 규정-심득의 순서로 제시되어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우리는 심득이 학생 훈육을 위한 위계적인 규율 시스템의 최말단에 위치하면서 학생들의 미시적인 행동과 동작을 통제하는 데 동원된 실제적인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전남 모 공립학교의 ‘아동작법(兒童作法)’을 보면 경례의 심득, 신체 의복에 관한 심득, 언어 동작에 관한 심득, 학교 왕래의 심득, 등교의 심득, 교실 내에서의 심득, 식사의 심득, 운동장의 심득, 변소의 심득 들이 실려 있다. 다음과 같은 교실 내의 심득을 보면 심득 규정이 교사가 학생의 언행을 통제하면서 학생들의 학교 생활 전반을 표준화?규격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활용되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1. 매시 교수의 시작과 끝에는 급장의 호령에 따라 교사에게 절을 해라.

2. 교실의 출입, 좌석의 거취 및 기구의 출납 등은 모두 교사의 지도에 따라 조용하게 해라.

3. 착석할 때에는 자세를 바르게 하고 양손을 무릎 위에 놓고 두 다리를 가지런히 하고 눈을 교사에게 주목하도록 해라.

4. 수업 중에는 속삭이거나 돌아보기 또는 떠드는 등의 일은 하지 말아라.

5. 발언을 하고자 할 때는 오른손을 들어 교사의 허가를 받아라.

6. 서서 발언할 때는 책상 옆에 똑바로 서서 양손을 내리고 눈을 교사에게 두고, 발언을 마치면 경례하고 착석해라.

 

이 시기 엄격한 학교 규율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례가 조회였다. 조회는 매일 아침 전교생을 대상으로 교정이나 적당한 장소에 집합시켜 복장 검사, 자세 훈련, 교원에 대한 아침 인사, 심호흡 훈련, 5분 체조 등을 하기 위해 실시하였다. 1924년 오츠카 타다에(大塚忠衛)가 쓴 《학교훈육의 실제》라는 책을 보면 학급 생도의 경례나 작법 등에 주의하게 하여 전교생의 작법 규율의 통일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에서 조회를 실시한다고 기술해 놓았다고 한다. 조회 때는 종종 교장의 훈화가 있었고, 하급교원(교사)이 이를 받아 학급에서 부연 해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회는 엄정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1929년 경성사범학교부속보통학교의 ‘조회’ 세목을 참고하여 당시 조회 장면을 복기해 보자. 먼저 조회를 위한 예령이 울리면 학생들은 모두 신속하게 운동장으로 이동한다. 본령이 울리면 바로 정돈하여 교장이나 교사가 단에 올라서기를 기다린다. 학생들을 학급별로 열을 이루어 부동 자세로 서며, 맨 앞에 학생 대표인 급장이 자리잡는다. 전교생 대표는 6학년 급장이 맡았다. 이들 급장과 전교생 대표 앞에 각 학급 담임과 교장이 위치한다.

학생들의 집합과 열 정리는 규칙에 맞게 바르고 빠르게 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개별적인 행동이 용납되지 않았으며, 한눈 팔거나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자세를 흩트리거나 옆을 보아서도 안 된다. 교사가 단에 올라가면 스스로 차려 자세를 하고, 단에서 내려오면 쉬어 자세를 취한다. 해산할 때는 자기 순서를 기다렸다가 움직인다. 조회는 대개 경례와 호령, 학교장 훈화, 검열 등의 순서로 이어졌다. 그런 점에서 조회는 학생들에게 상명하복에 따른 위계 질서와 통일성이 지배하는 일사불란한 학교 공간을 체득시키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 학교 규율 시스템을 지탱하는 또 다른 중요한 축은 감시와 처벌제도였다. 무엇보다 복장 검사나 소지품?학용품 검사 같은 학생 감시 제도가 일상적으로 운영되었다. 복장 검사와 학용품 검사는 매월 1회 이상 실시되었다. 일부 학교에서는 매주 토요일에 학용품과 휴대품 일체, 신체 복장에 대한 정기 검열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검열’이라는 용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당시 학교 당국이 학생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위해 실시한 복장 감시 규율은 대단히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방식으로 실시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경성사범학교총람》에 규정된 ‘복장 규제’ 관련 조항들을 보면 복장 종류, 착용 시기, 모양, 옷감, 부속 장식물(단추, 호주머니, 모표 등) 들에 관한 내용이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복장 종류만도 정규복장, 무장(武裝), 무도복장, 운동복장, 실습복장, 약장(略裝) 등이 있었다. ‘복장 검사 규정’에는 검사 횟수, 검사 항목(모자, 상의, 바지, 각반, 구두, 농업용 버선), 검사 요령에 관한 내용들을 담아 놓았다. 모자를 예로 들면 장식 변형 여부, 구멍을 뚫었는지 여부, 끈과 단추와 앞 차양이 정규 제식에 따랐는지 여부, 내부에 천이 있는지 여부 등등 세세한 부분에 걸쳐 철저하게 검사하게 하였다. 또한 소지품 검사를 위해 ‘사생 소지품 검사 규정’과 ‘생도 소지품 검사 규정’을 만들어 정기검사와 임시검사(특히 기숙사생의 경우)를 실시하였다.

학교 규율은 감시뿐 아니라 학생 처벌 제도를 통해서 조성되기도 했다. 그 핵심에 징계 제도가 있었다. 1934년의 <보통학교규정> 제77조~80조는 퇴학, 출석 정지(정학), 제명(제적), 징계와 관련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경성사범학교의 사례를 보면 처음에 ‘계칙(戒飭)’, ‘근신’, ‘정학’의 3가지 징계 유형이 있었다. 정학은 중간에 ‘가정 근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고, 징계 유형 중 가장 강력한 처벌로서 학생을 학교에서 제적시키는 ‘방교(放校)’가 추가되었다. 학생들은 징계 시에 ‘시말서’를 써야 했다. 경성사범학교 사례에서 특기할 만한 것으로 ‘훈고식(訓古式)’이 있었다. 훈고식은 정학 처분을 받은 학생이 진실로 반성하는 경우에 학교장을 포함한 전 교직원과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반성하고 서약하게 하는 ‘반인권적인’ 의식이었다.

 

 

정은균 군산 영광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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