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초에는 자기개발과 관련한 업종이 호황이다. 다이어트를 위한 피트니스클럽, 금연 보조제, 외국어 학원 등이다. 올해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목표를 새운 사람들은 기꺼이 새해 초 지갑을 연다. 이를 결심산업이라고도 한다.
연말에는 사람들이 어디에 돈을 많이 쓸까. 한 가지만 꼽으라면 술 아닐까 싶다. 12월 즈음이 되면 사람들은 연 초 목표했던 바를 제대로 이뤘는지, 이루지 못했다면 이유는 무엇인지, 내년에도 같은 목표를 세울 것인지 등을 결산한다. 그 착잡한 기분을 견디는 데는 술이 제격이다.
개인은 물론 조직에서도 결산은 중요하다. 연 초 세웠던 계획과 성과를 따지고, 반성과 조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술자리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성적인 의사결정만으로는 수정할 수 없는 아집에 가까운 목표, 편향된 조직 분위기 때문에 무리하게 붙잡고 있는 사업계획 등이, 술을 동반한 뒤풀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담론화된다. 저녁 술자리에서 만들어진 여론은 낮 업무시간 속으로도 자연히 스며든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한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현실적으로 수정 보완된다. 과장을 보탠다면 주류(酒類)업은 일종의 결산산업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런 허심탄회한 중간결산이 필요해 보인다. 아집에 가까운 정책목표를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현 정부 중점 목표인 최저임금인상과 관련해 수정보완 계획이 전혀 없어 보인다. 시장의 주요 주체인 기업인들 사이에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사실상 실패한 정책으로 평가받는다. 자영업자들은 살아남고자 사장이 직접 서빙을 하는 등 고용을 줄이며 정책취지에 전면적으로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다. 정책의 직접 수혜자로 예상됐던 근로자들은 오히려 피해자가 됐다.
이외에도 현 정부가 출범초기부터 강조했던 소득주도성장, 일자리 중심경제는 어떤가. 경제성장률은 작년 10월 3%, 올해 10월은 2.8%, 내년 예측치는 2.6%다. 하락세다. 일자리 문제도 심각하다. 지난달 실업률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높은 3.5%다. 저성장속에서 실업자는 늘어나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가상승마저 우려된다. 체감경기는 물론 수치로 나타난 경제만 봐도 총체적 난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장하성 전 정책실장을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로 대체한 이번 인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는 미식축구식 불도저 전술을 보는 것 같다. 김 정책실장은 사실상 최저임금인상, 소득주도 성장론과 관련해 장 전실장보다도 강성이라는 게 지배적 여론이다. 시장과 현장의 목소리를 정부에서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이런 식의 원안고수 밀어붙이기 인사를 진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그 성과가 드러나는 영역인건 맞다. 그렇지만, 당장 모든 경제관련 수치가 최악을 기록하는데도 당초 목표에 대한 어떤 중간결산 시도도 하지 않는 건 논리적이지 못하다. 이런 상황인데도 현재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한 의구심 섞인 목소리가 정부 어디서도 명확히 들리지 않는다. 혹시 현 정부의 의사결정 분위기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편향돼버린 게 아닐까 우려되는 대목이다.
국무회의가 끝나고 술자리에서 국무위원들이 서로 “회의 때는 말 못 했는데…” 또는 “아무개 장관님 아무리 청와대 오더라지만 이번 정책은…”하며 목소리를 낮추며 취중진담을 나누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이런 술자리가 잦을수록, 대통령의 결심과 국가의 목표에 대한 뒷담화가 많을수록, 그래서 정책 결정권자들의 현실성 있는 고민과 중간결산이 촘촘해질수록 한국경제도 나아질 것이다.
윤석<삼부종합건설 기조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