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차, 차의 경계
공부차, 차의 경계
  • 이창숙
  • 승인 2018.11.11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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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40>
무이산 전경

 찻잎에서 어떻게 꽃향기가 나는지, 사실 차를 만드는 과정을 보지 못하면 그 풍미를 알기 어렵다. 살짝 숨죽은 찻잎을 만질 때마다 스치는 향기, 솥에서 덖고 건조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잎의 변화를 지켜본 이들은 그 향기로움에 잠시 취하게 된다. 차는 제다 공정에서 발효 정도에 따라 6대 다류(녹차, 백차, 청차, 황차, 홍차, 흑차)로 분류되며 다양한 맛과 향기, 색으로 구별된다. 우리의 경우 녹차가 차 생산량의 대부분이지만 중국은 차 생산국으로 1년 내내 6대 다류인 모든 다양한 차를 생산한다.

  중국인들은 고대부터 차나무를 심고 키우고 차를 만들고 우려 마시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정성, 비용을 들였다. 차와, 차를 마시기 위한 다구(茶具)는 더욱 정교하고 아름다워졌다. 뛰어난 감상품을 소장하고 감상하는 즐거움도 컸다. 같은 차라도 우려내는 사람에 따라 차의 맛과 향, 운치는 차이가 있다. 다양한 종류의 차 특성을 알고 거기에 맞게 차의 양, 물의 온도, 차를 우리는 시간을 연구하여 최상의 맛을 알아가는 것을 공부차(工夫茶)라 하였다. 공부차는 명차로 인정받고 있는 것만 해도 100종이 넘는다. 차는 일찍이 귀한 선물이었다. 손님이 오면 차를 내는 것은 당연하며 이러한 과정은 마음을 나누는 과정으로 존경과 겸손을 표시하게 된다. 이는 중국인들의 전통이며 예절이다. 손님과 주인이 자리를 함께하면 다관을 준비하고 찻잔을 올려놓고, 찻잔에 차를 따른다. 차를 정교하게 다루고 다구를 준비하는 과정은 마음이 정갈해지고 푸근해진다. 이것이 공부차가 만들어낸 여유있는 분위기이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거나 토론을 하거나 술자리를 마치고 난후 차를 마시는 것은 중국인의 오랜 일상이다. 공부차는 차를 마시는 장소가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없다. 숲속, 물가, 집안 어디서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차를 마신다. 하지만 물과 다구는 중요시했다.

  공부차에 적합한 차는 오룡차(烏龍茶)이다. 오룡차는 반발효차인 청차(靑茶) 계열이다. 찻잎의 산화 정도는 녹차와 비슷한 20%와 홍차와 비슷한 80%까지 다양하다. 채취한 찻잎은 서늘한 곳에서 시들기를 한다. 찻잎을 반복해서 흔드는 과정에서 찻잎이 부딪치며 산화나 발효가 일어난다. 찻잎이 둘둘 말리면서 가운데는 푸른색을 간직하고 잎의 가장자리는 붉은색으로 변한다. 덖는 과정에서 그 상태를 유지하며 둥글게 말릴 때까지 비빈다. 말리는 작업을 거치는 동안 향기가 찻잎 속에 간직된다. 오룡차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일부는 추가 공정에서 손이나 기계로 계속 찻잎을 굴려 수십 차례 반복한다. 녹차와 홍차의 장점을 갖고 있으며 다양한 향기와 청량감이 뛰어나다. 오룡차의 시조는 무이암차이다. 무이산은 골이 깊고 바위가 많아 갈라진 바위틈에서 차나무가 자랐다. 차농들은 차나무를 관리하고 찻잎을 채취하기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그래서 “바위마다 차요, 바위가 없으면 차도 없다”는 말이 생겨났다. 이곳에서 만든 차를 암차(岩茶)라 했다. 향과 맛이 조화롭고 깊으며 다소 추상적인 표현인 특유의 암골화향(岩骨花香)의 암운(岩韻)이다. 무이암차의 외형적 특징은 둥글게 말지 않고 차엽이 길게 비벼진 상태이다. 반 발효중에서도 발효도가 깊은 편이다. 중국인들은 반발효라는 불분명한 경계에서 공부차라는 조화로운 차로 승화시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었다.

  1607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초기에 중국에서 무이암차를 수입해 유럽에 유행시켰다. 영국인들은 차츰 그들에 맞는 홍차를 유행시키게 된다. 우리의 차문화 역시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차의 유입부터 마시는 방법과 제다방법이 그러하다. 고대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현대에 이르렀으나 아직도 독자적인 차문화를 만드는데 미흡하다. 차나무가 자라는 토양이 다르고 사람과 풍습이 다르니 차의 품성도 다를 것이다. 차를 마시기위해 차와 다구를 준비하는 일 또한 아름다움에 다가가는 것이니 매사 절로 되는 게 있겠는가.

  차는 세계인이 즐기는 음료이다 보니,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것은 호기심과 더불어 즐거운 일이다. 그들이 간직한 문화는 자국의 이익은 물론 그들만의 정체성을 지닌다. 유럽문화 연구가가 유럽인이 되고, 일본문화를 연구했다 하여 일본인이 될 수 없듯이 모든 것에는 경계가 있지 않을까.  

 

 / 글 = 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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