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조창의 선구자 지봉 임산본 명인 타계
국내 시조창의 선구자 지봉 임산본 명인 타계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8.11.10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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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협회 국악장으로 장례 치러

 

 국내 시조창계의 큰 별이 졌다. 시조창의 선구자이자 최고의 명창인 지봉 임산본 명인이 9일 오후 10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8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인 고인의 장례는 전북국악협회 국악장으로 치러진다.

 국내 시조창의 독보적인 경지에 올랐던 임산본 명인은 정가 중에서도 시조 가곡은 물론 12가사를 완창 한 유일의 명창이란 평가를 받았다. 명인이 뽑아내는 시조창은 경건함과 깊은 맛이 어우러져 천상의 소리로 승화, 100년 만에 한 명 나오기 어려운 명창이란 문화예술계의 이야기가 회자했다. 
 
 완제창법의 완성자인 명인은 완주군 구이면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한학자인 조부를 따라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면서 처음 시조를 접했다. 최고의 노력을 통해 자신만의 지평을 열었던 명인은 평생을 시조인의 외길 삶을 영위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기량을 갈고 닦았다. 

 이를 토대로,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에 걸쳐 굵직한 전국 경창대회에서 장관상에서부터 국무총리상, 대통령상까지 모두 거머쥐는 활약상을 전개했다. 지난 1979년 대한시우회 명창부 1등, 1980년 전주대사습 시조부 장원, 1985년 제31회 백제문화제 시조경창대회의 장원인 대통령상 수상 등 국내 대회에서 최고의 경지를 자랑했다. 1988년에는 완주군민의장을 수상했고, 1996년 3월에는 최초로 시조창(완제) 부문에서 전북도 무형문화재(제14-1호)로 지정된 바 있다.

 명인은 후학 양성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 1985년에 시조연구소를 개설했으며, 1980년대 중반엔 국악협 전북지부 시조분과위원장을, 1994년부터는 한국국악협회 전북지부감사 및 전북도립국악원 시조부 교수로 활동하는 등 시조창 활성화와 후학 양성을 위해서도 혼신을 다해왔다. 

 명인은 또 청렴과 소박함을 일생의 철칙으로 삼았다. 명인은 평소 “시조와 가사, 가곡을 이르는 정가는 말 그대로 ‘바른 노래, 아정한 노래’라는 뜻”이라며 제자들이 바른 노래, 바른 삶을 살 것을 강조했다. 청빈한 삶을 살면서도 타인을 위해선 모든 것을 내줄 정도로 이웃사랑, 특히 후배와 문화생 사랑은 큰 바다를 연상케 할 정도로 넓고 깊었다는 후학들의 전언이다.

 슬하에 임 환 전북도민일보 사장 등 5남이 있으며, 빈소는 전북대병원 장례식장 2층 천실, 발인은 12일 오전 10시다. 장지는 완주군 구이면 항가리 선영하. 연락처는 임환 전북도민일보 사장(010-3675-9333)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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