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교원검정시험에 숨은 음모
조선 교원검정시험에 숨은 음모
  • 정은균
  • 승인 2018.11.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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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균의 학교뎐 15]

‘나’(1930년대 초 경성사범학교 예비교사)는 사범학교 교육학 교과서에서 학생 교육 내용이 교수(각종 교과), 훈련(훈육과 규율), 양호(신체 발달) 등의 세 가지 영역으로 나뉜다고 배웠다. 당시 교사들은 훈육을 훈련과 거의 같은 뜻을 지닌 말로 썼는데, 우리에게 훈육이 학생들을 도덕적으로 교화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가르쳤다. 실제 교과서에서도 훈육은 규율에 따른 학생 행동 강제, 도덕적 태도 함양 유도, 실천 습관 양성 들을 중심으로 정의되어 있었다.

경성사범학교 훈육 시스템의 핵심은 학생이 규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게 훈련하는 데 있었다. 이를 위해 학교에서는 구체적으로 학생 행동 수칙(code of conduct)을 세세하고 정하여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자기 검열을 하게 만들었고, 단체훈련과 활동을 통해 획일적인 집단주의를 내면화하려고 하였으며, 학생 통제 조직을 통해 집단 행동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하였다. 학생 행동을 면밀하게 파악하기 위한 감시 체제를 구축하는 일도 철저하게 수행하였다.

처음에 나는 학생 훈육이 규율과 처벌로 유지되는 학교 시스템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조회나 회합, 교외 소풍과 수학여행과 견학 활동을 할 때 일사분란하게 대열을 맞추어 이동하거나 개인적인 행동을 극도로 통제하고, 교사의 명령과 지시에 절대 복종해야 하는 문화에서 아동의 정서와 심리가 극도로 위축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계절별로 서로 다른 복장 수칙을 정해 놓고 이를 준수하게 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자율과 자치 능력이 희박한 보통학교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은 위험하였다. 천황 폐하를 신으로 모시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판단하건대 학교와 학급과 가정은 각자의 영역에서 조그만 국가처럼 꾸려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거꾸로 말하면 국가는 큰 가족이었다. 따라서 교육칙어의 정신에 따라 학교 규칙은 천황의 조칙이고, 교사 지도는 천황의 하명이라고 이해하였다.

나는 당국이 학생 훈육을 통해 학교 안에 엄격하고 일사분란한 규율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염두에 둔 핵심적인 목적이 원활한 식민 통치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일찍이 조선(인)에 대한 관점 개조 작업에 박차를 가한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예를 들어 나처럼 사범학교에 다니던 예비교사들은 조선인의 ‘악습 폐풍’을 철저하게 학습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교사직 준비 과정에서 조선의 양풍과 폐풍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제1종 교원시험의 ‘조선 사정’이라는 시험 과목을 준비해야 했다. 당시 우리는 조선 사정 시험을 준비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참고서를 보기도 했는데, 그 중 조선의 풍속 습관에 대한 것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조선풍속집》이 널리 추천되었다.

조선의 ‘폐풍’은 교원검정시험에서 수신 교과의 주요 문제로 출제되기까지 했다. 수신 교과는, 일본 제국이 군국주의의 길을 가는 데 핵심적인 이념 기반이 되었던 교육 칙어에 따라 만들어진 최상위 도구 교과였다. 교육 칙어 반포 직후인 1891년 11월 <소학교교칙대강>의 제2조에 “수신은 교육에 관한 칙어의 취지에 기초해서 아동의 양심을 계발하고 기르며, 그 덕성을 함양하고,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요지로 한다”라고 되어 있었다.

 조선 교원검정시험의 수신 교과에 출제된 조선 폐풍과 관련된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조선에서의 풍습에 대해 개선을 요한다고 생각하는 사항을 열거하라.”(1919년 충청북도) “보통학교 생도에게 조장 또는 교정하도록 해야 하는 조선 고래의 습관을 묻는다.”(1918년 10월 경상북도) “조선 현재의 시시에 비추어 도덕상 개량을 요해야 하는 점을 들어 각자의 의견을 진술하라.”(1917년 경기도)

나는 《조선풍속집》을 공부하고, 조선의 폐풍을 묻는 기출 문제들을 공부하면서 학생 훈육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이 학교 규칙과 교사 지도에 무조건 복종하는 정신을 기르게 하는 데 어떤 학생 규율 기법을 쓸 수 있는지, 이를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유심히 살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이 조선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업교육과 관련된 덕목이나 시간관념에 관련된 규율을 기르게 하는 훈육 방식이었다. 공립의주보통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근검 사상을 기르게 한다는 명목으로 당번 근무제를 실시하였다. 지각 교정을 위해 훈시와 아침 8시 호종(號鐘)제를 운영하기도 하였다. 1910년 2월에 나온 학부학무국(學部學務局) 학사 상황 보고 요록에는 서당 교육에 익숙한 조선 학생들에 관한 규율이 담겨 있었다. 조선 학생들은 시간 관념이 없고 불규칙하며, 기거나 동작에 절도가 없다고 분석되었다. 그래서 교실에서 정숙을 유지하고 일사분란한 수업을 하는 데 지장이 있다고 하면서 교실 출입을 엄격히 행하고 시간 시종(始終)을 지키게 하여 규율에 맞지 않는 행동을 금하게 하였다.

학생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개별 학생에 대한 기초 조사 자료를 확보하는 일이 중요하다. 보통학교에서는 교사로 하여금 학생의 신체, 정신, 태도, 가정 형편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는 항목들을 관찰하고 조사하여 기록하였는데, 이러한 조사를 ‘개성 조사’, ‘성행(性行) 및 가정 상황 조사’, ‘조행(操行) 조사’로, 조사 결과를 기록한 서류를 ‘개성 조사부’라고 불렀다. 개성 조사부는, 학생의 출결 상황이나 성적을 중심으로 관리된 학적부와 달리 학생의 신체적?정신적 성향이나 태도, 가정 환경 등 다방면에 걸쳐 개별 학생에 관한 상세하고 치밀한 개인정보를 담고 있었다.

개성 조사부는 1930년대 초 ‘교육 실제화’ 정책이 도입되면서 보통학교에서 학생들의 직업 지도를 위한 기초 자료로 쓰기 위하여 등장하였다. 여기서 교육 실제화 정책은 학생 장래 진로와 직업 지도를 통한 실제적인 교육에 초점을 맞춘 정책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가장 눈길을 끈 것이 개성 조사부 조사 항목 중에 포함된 ‘지능’이었다. 그 전에 우리는 지능이라는 개념을 전혀 접하지 못하였으니, 개성 조사부는 교육 체제 안에 지능이 최초로 출현한 사례라고 할 만하다. 지능 검사 결과는 학생 진로나 직업 지도 자료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이때 진로와 직업 지도는 학생의 상향적인 사회 이동 욕구를 냉각시키고, 그들을 식민지 경제 체제의 안정적인 재생산에 요구되는 역할(주로 농업 노동)에 배치하는 과정이었다.

 

 

정은균 군산 영광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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