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서정환
  • 승인 2018.11.0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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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을 들라고 하면 먼저 ‘안톤 슈낙’이 떠오른다. 그는,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섬세한 언어로 서정성을 불러일으켰다. 옛날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서 많은 학생들의 가슴을 울렸었다.

 울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비 내리는 밤 사랑하는 이의 발자국 소리가 사라져갈 때 우리를 슬프게 하고, 동물원의 우리 안에서 불안하게 서성이는 표범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내달리는 기차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답장을 받지 못해서 우리를 슬프게 하고, 가을걷이가 끝난 텅 빈 논밭, 술에 취해 쪼그리고 앉아있는 여인, 쪼개져 나간 나뭇등걸, 장의 행렬, 양로원에 기거하는 노파의 눈물, 휴가의 마지막 날밤 등등 하고많은 슬픔이 우리를 울린다.

 슈낙이 “우리를 슬프게 한 것들”이라고 열거한 것들을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래도 낭만적인 사치가 아니었나 싶다. 오늘날의 우리 현실을 보면 온통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 에워싸고 있다.

 울고 있는 하청업체 직원들이 슬프고, 가진 것이 없어서 슬픈데 가진 것 없는 그마저 송두리째 앗아가려 할 때 참 슬프다. 동네에 있는 이웃들의 가게, 문방구, 빵집 등등 정다운 것들은 점점 없어지고 그 자리에 대기업의 분점, 프랜차이즈점, 다국적 기업의 카페 불빛이 아른거려 슬프다.

 있는 자에 대한 온갖 관대함과 없는 자에 대한 무한한 갑질이 이 나라 모두의 슬픔의 근원이어서 우리가 참 슬프다. 비열한 사회에서 모멸과 수치를 느끼며, 인간대접을 못 받고 눈칫밥 먹으며 남루를 뒤집어쓰며 그렇게 꼭 살아야 하나 싶을 때 슬프다. 늙고 아프고 짐 되면 죽는 것이 낫고, 돈 없고 서럽고 쓸모없으면 죽는 것이 낫고, 공부 못하고 밥·돈 축내면서 벌레 취급당하면 죽는 것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두루 만나면 슬프다. 자살이 아니라 사회적 타살이라는 주장에 수긍이 갈 때 슬프다. 사실 가슴을 후벼 파는 것은 없는 자가 되어 슬픈데, 나보다 더 없는 자를 우리 사회가 슬프게 할 때 더 슬프다.

 그보다 더 많이 슬픈 것은 우리 동네 사람들이다. 모두가 양반이고 순한 선비만 사는 동네여서 슬프다. 뒤에서는 푸대접이니 홀대니 하고 열을 올리면서 막상 앞에 나서서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우물거리기만 하여 슬프다. 우리 동네 조선소가, 자동차 공장이, 어느 대학이 문을 닫아 경제 파탄이 나서 서민들이 아우성을 치는데도 제대로 된 목소리 한번 내지 못하는 우리 동네 리더들을 대하는 일이 슬프다. 한다는 일이 누가 온다고만 하면 온 동네에 깃발을 펄럭이면서 금세 파라다이스나 될 것처럼 흥청대는 모양새가 참말 슬프다.

 이제는 30년 가까이 우리 동네 희망이고 꿈인 새만금에 느닷없이 태양광을 던져 주니 그나마도 좋아라고 사탕 물고 있는 입들이 되는 게 슬프다.

 다른 동네 사람들이 나서서 그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데 우리는 주는 떡이라고, 정부 정책이라고 감지덕지 손만 흔드는 게 슬프다.

 이웃 동네 남쪽 사람들이라면 주는 떡이라고 조용히 먹기만 하겠는가. 우리 동네 사람들은 왜 주는 떡만 좋아할까. 제 몫은 제가 찾아야지 언제까지 뒷방에서 잔기침만 하고 있을 것인가. 참 슬프다. 슬픔을 넘어 분노가 치밀고 허탈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힘내자.” 라고 외치자니 더없이 슬프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의 자손들을 위하여 오늘의 슬픔이 큰 춤판이 되는 날까지

 “우리 모두 힘내자.”

 서정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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