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찾아오는 단골손님, 외로움
가을에 찾아오는 단골손님, 외로움
  • 이소애
  • 승인 2018.11.06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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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엔 가을볕이 앙상한 나뭇가지에 내려앉고 형형색색의 마른 잎들이 허공에서 길을 잃고 나부낀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공허한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소리다.

 싸늘한 날씨에 낭만을 즐기기 위해 장롱 속에서 바바리코트를 꺼내어 입고 거리를 한바탕 거닐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기도 하는 가을이 깊어간다.

 10월의 마지막 날은 하루종일 ‘잊혀진 계절’ 노래가 시곗바늘을 돌린다. 잊고 있었던 외로운 감정을 파도처럼 가슴으로 밀려오는 시월 마지막 날은 잔잔했던 마음이 외로움을 불러들인다. 무채색의 겨울이 올 때까지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은 우울증으로 번진다고 한다.

 가을에 외로움을 타는 것은 산소부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산소는 외로움이라는 인간의 감정을 담당하기 때문이란다. 젊은이들은 스마트폰 앱과 함께라면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지만, 노인들이 경험하는 계절성 외로움은 가을 우울증으로 유발한다. 햇빛의 일조량과 일조시간이 짧아서다. 이는 호르몬 변화로 인하여 느끼는 외로움 증상이다.

 가을 외로움은 혼자 살 수 없는 사회공동체에 얽힌 관계 속에 살고 있기에 더욱 고독해진다. 조금 더 비우고 조금 더 버리면 고독을 벗어나 따뜻한 그리움이 기다려질 수 있는데 그렇게 실천하기가 어렵다.

 독립적 동물인 고양이도 외로움을 탄다고 한다. 주인과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거나 혼자 오랜 시간 집에 있으면 외로움이 우울증을 유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고양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혼자 있기를 싫어하기 때문에 쪼르르 주인을 따라다닌다. 잠을 잘 때는 사람 품에 안기고 싶어서 살짝 이불 속으로 파묻기도 한다. 낮에는 같이 놀자고 “야옹”하면서 조르기도 한다.

 곰곰 생각해 보니 사람이나 고양이나 외로움을 느끼고 또 그 외로움을 우울증에서 탈피하기 위한 생활방식도 같다. 따뜻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엄습해오면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는 게 가을 외로움이다.

 사방천지 눈에 보이는 풍경은 다 외로운 것뿐이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낙엽이 그렇다. 이는 되돌아올 수 없는 이별의 풍경이기에 바라만 보아도 서글퍼진다. 풍성하게 익어가는 곡식도 뿌리째 뽑힌다. 과일 열매도 이별을 겪지 않으면 씨앗을 얻을 수가 없지 않은가. 참깨나 콩은 도리깨로 아프게 두들겨 맞아야 알곡이 햇빛을 본다.

 사소한 일에 신경이 쓰이고 걱정거리가 잠을 설치게 하는 가을밤이다. 의욕이 떨어지고 만사가 귀찮아지고, 즐거운 일이 없고 세상 일이 재미가 없다고 생각이 커지는 시월 마지막 날 밤에 있었던 일이다.

 ‘혼자 오신 분 저랑 함께할까요?’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어 줄게요’

 ‘짝 구함, 보증금 없음’

 전주찬가 시극 페스티벌인 전주의 사랑이야기 공연장 앞에서다. 싸늘한 밤바람이 예쁜 글씨로 쓴 피켓을 가끔 흔들어 본다. 재밌는 글을 읽으면서 지나갔더니 피켓이 살짝 사람의 발목을 끌어당겼다. 참 오랜만에 젊은 피가 온몸을 휘도는 것 같았다. 빨간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시극 공연을 관람하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다.

 그런 후, 달달한 초콜릿 맛과 같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행복하다고 느낄 때 분비되는 ‘세로토닌’을 촉진해 가을철 외로움을 정복해서 맑은 정신으로 되돌아오는 즐거움을 획득했다.

 가벼운 산책으로 가을바람으로 샤워하고 청정한 햇빛으로 마사지하며 사간을 차곡차곡 쌓고 나니 비타민D는 ‘엔드로핀’의 분비를 촉진 시켜서 외로움을 치유 하지 않은가.

 이는 시극을 연출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준 시인들의 시가 있어서였다. 세상을 밝게 창조해내는 시인들의 건강한 시가 가을이면 찾아오는 단골손님인 외로움에서 탈출하도록 했다.

 예술은 세상을 어둠에서 희망을 꿈꾸도록 유인하는 묘약이 있는가 보다.

 이소애<전주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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