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 앞 놀이터
미술관 앞 놀이터
  • 김은영
  • 승인 2018.11.01 17: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을 단풍이 선명한 빛으로 물들고 있는 이곳 모악산에 위치한 도립미술관에는 요즘들어 소풍오는 유치원생들의 모습을 자주 본다. 전시장을 관람하기도 하고 그냥 야외 수업이나 가을소풍차 미술관을 찾는다. 미술관 사무동 앞에는 놀이터가 있는데 아파트 단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근린공원 같은 모습으로 플라스틱의 알록달록한 놀이기구를 사람들은 많이 애용한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젊은 엄마와 가족, 연인들, 중년의 부부나 친구들, 야외학습 나온 청소년들이 모여들고, 푹신한 바닥에 아이들이 둘러앉아 도시락도 먹고 야외 수업도 하는 정겨운 모습들이다.

 동시에 도립미술관의 또 다른 이미지는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과 상관없이 모악산의 산림 속에 안주하고 있는 모습이다. 미술관 전면의 야외정원은 가로수와 경관수로 꽉 채워져 건축물이 드러나지 않으며 옥외에서 다양한 복합문화예술 콘텐츠를 운영할 수 없는 구조적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문화기관들의 최근 추세가 된 콘서트나, 야외 이벤트도 거의 없이 해가 갈수록 은폐된 존재감은 미술관에 대한 도민들의 흥미를 잃게 만드는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전주 시민들이 주말에 가족나들이 장소로 이 놀이터를 찾는다는 것이 다행이긴 하지만 문제는 이 모습이 미술관과 부조화를 이룰 뿐 더러, 미술관이 이 정도 기능에 만족하기에는 공공 문화자산으로서의 위상과 역할이 너무 크고 중요하다. 사람들이 미술관에서 여가를 보내고자 하는 욕구를 충분히 포용하면서도 품격있고 생동감 있는 현대미술관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도록 야외정원과 놀이터와 건물경관이 어우러져 있다면 정말 근사할 것 같다.

 현대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전통적 기능에서의 기본적인 교육을 넘어 여가 생활의 증진까지 역할을 넓히고 레크리에이션적인 체험을 위한 장치들을 갖추기 시작했다. 사회학자 쇼(Shaw)는 여가 선용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지니며 개인이 강제성 없이 선택한 레저 활동은 자신을 표현하고 자발적으로 행하게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면서 마음의 긴장을 풀게 해준다고 보았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점은 박물관의 활동에서 더욱 주목된다고 했다. 박물관 안에서 전시와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다양한 교육이나 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특별한 시설을 이용하면서 교육, 명상, 사교, 장소와 공간이라는 여가적 형태들을 경험한다.

 전세계를 막론하고 예술작품이면서도 사람들이 올라타서 만지고 체험하는 실제 놀이터를 구현하는 미술작품(playground work)이라는 장르를 흔히 볼 수가 있다. 몇 년 전 영국의 테이트미술관에는 전시장 2층에서 1층 라운지로 이어지는 튜브 작품을 설치해 사람들이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게 해 두었다. 뿐만아니라 홀의 벽면 높은 곳에 인공해를 설치해 사람들이 전시장 가득히 누워 시간에 따라 변하는 해를 바라보고 쉴 수 있는 작품으로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미국의 한 미술관의 야외정원에는 매년 설계경기를 통해 미니골프장을 놀이터미술작업으로 만들며 미술관을 찾는 이용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전북도립미술관은 2004년에 개관하였지만 20세기 후반 문화인프라를 도심 외곽이나 산지에 건립하던 시기의 미술관 개념에서 출발했다. 일년전 필자가 미술관장으로 부임한 이래로 미술관의 경관을 업그레이드하여 건물의 외관과 야외정원이 주요 관람요소가 될 수 있도록 명소화시키고 거기에 다채로운 교육, 복합문화 프로그램을 포용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여 모두를 위한 소통의 장, 편안하고 즐기고 가고 싶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놀이터의 개념을 확대하여 미술관의 앞마당이 풍성한 놀이와 휴식과 체험의 공간이 되게 할 것이다. 심미성과 기능성을 갖춘 야외정원의 재구성, 미술관건축을 살리고 가시성을 더할 경관조명, 도립미술관 성격에 적합한 아트팹랩, 플라스틱 놀이기구를 대체할 놀이터아트?이 결합하여 미술관의 새로운 기능과 이미지의 극적인 변신을 가져오게 할 구상이다. 미술관의 경관 리모델링 사업은 미술관 생애주기의 새로운 단계를 알리고 미래를 향해 나가는 새로운 이정표가 될 것이다.

 김은영<전북도립미술관 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