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方明珠와 전주 143익스트림 타워
東方明珠와 전주 143익스트림 타워
  • 이종호 기자
  • 승인 2018.10.31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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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이징이 중국 정치의 중심이라면, 상하이는 중국 경제의 핵심이다.

 1842년 난징조약은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상하이를 ‘아시아 최대 금융시장’으로 변모시켰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상하이는 뉴욕, 런던에 이어 세계 3위의 금융시장으로 급성장하면서 ‘아시아의 월 스트리트’라는 애칭을 부여 받았다.

 30여 개에 달하는 외국계 은행들이 진출해 100년 가까이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49년 공산당에 의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다. 외국 자본가들이 홍콩, 싱가포르 등지로 떠났기 때문이다.

 상하이가 긴 잠에서 깨어난 것은 1978년 개혁 · 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다.

 그중에서 상하이의 경제발전을 이끌어 낸 것은 단연코 1994년 건립된 동방명주가 꼽힌다.

 동방의 밝은 진주라는 뜻을 가진 동방명주는 순수한 중국의 자본과 기술로 완성됐으며 푸동 루쟈쭈웨이 금융 구에 위치하고 있는 방송 수신탑으로 총 높이가 468m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 세계에서 네 번째로 높다.

 동방명주가 들어서면서 인근에는 101층의 상하이 세계금융센터와 88층의 진마오 빌딩이 들어섰으며 연꽃 빌딩, 비행접시 빌딩, 더듬이 빌딩, 연필 빌딩 등 각양각색의 볼만한 건물들이 들어서 이들 건물에서 내놓는 야간조명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상하이 야경을 연출해 냈다.

 동방명주가 중국 경제개혁의 대명사라 불리고 있는 이유다.

 상하이에 본격적인 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2011년에는 싱가포르를 밀어내고 세계 제1의 컨테이너항에 등극했다.

 최고급 브랜드숍이 밀집한 거리, 분위기 좋은 노천의 카페와 갤러리가 모여 활기찬 대도시로 변모했다.

 서울의 열배가 넘는 면적에 2천500만 명에 달하는 인구와 상주인구를 압도하는 연간 5천만 명의 관광객.

 중국인들 대부분이 상하이에 살고 싶어 하면서 인구가 몰리자 이곳에 살기위해서는 정부에서 마련한 엄격한 조건을 거쳐야 비로소 상하이 시민이 될 수 있을 정도다.

 지금도 21세기 도약하는 중국을 상징하는 동방명주는 랜드마크가 도시발전에 얼마큼 중요한 비중과 역할을 차지하는 지 보여주고 있다.

 전주에서도 동방명주와 비견할 수 있는 대규모 랜드마크 건축물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

 전주서부신시가지 지구단위 계획에서 제척되면서 십 수 년간 도심 속 오지로 방치돼 왔으며 40년 이상 된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주변 환경까지 오염시키고 있던 대한방직 전주공장 터를 헐고 건립이 추진되는 143익스트림 타워.

 옛 대한방직 터를 인수한 자광은 이곳에 랜드마트 건축물을 조성해 한옥마을과 연계한 연간 2천만 명 이상이 관광객, 연간 6만 명 이상의 고용인원 창출로 전북이 더 이상 떠나는 도시, 낙후된 도시라는 오명을 벗고 전국 어느 도시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만큼 경제발전을 이루는 데 견인차 역할을 다짐하고 있다.

 “전북의 젊은이들이 더 이상은 고향을 등지지 않고 어깨를 당당히 펴고 고향에서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자광 전은수 대표의 말에는 비장함마저 서려있다.

 하지만 공장부지를 개발사업이 가능한 용지로 용도변경하는 과저에서 발생하는 특혜시비와 난개발, 교통, 인구 과밀화 문제는 풀어야할 어려운 숙제다.

 타워주변에 대규모 놀이시설과 편의시설이 들어서면서 방문객들이 한 곳에서만 머물러 결국 개발업체의 배만 불릴 것이라는 우려도 이해시켜야 할 부분이다.

 이 같은 우려와 시비 속에서도 자광은 최근 대한방직 전주공장의 부지잔금을 완납하고 소유권이전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143익스트림 타워가 우려가 현실이 될지 아니면 기대만큼의 성과를 낼지는 상하이 동방명주에 해답이 있지 않을까.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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