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DJ, BTS를 공부하다
나이 든 DJ, BTS를 공부하다
  • 김차동
  • 승인 2018.10.28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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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나훈아와 남진을 오가다가 조용필에 열광하던 세대다. 내 청춘의 날들, ‘아마 나는 아직은 모른가봐, 그런가봐.’라고 읊조리던 그의 목소리는 내 영혼의 그것에 불과하였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당신의 눈 속에 내가 있고 내 눈 속에 당신이 있을 때’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 불끈거리는 청춘의 열기를 발산할 통로였던 조용필.

 조용필 이후 단 한 사람, 이것은 획기적인 충격이다 할 만한 존재가 있었으니 그는 서태지였다. 개인적으로 그의 노래 때문에 집을 나갔다가 돌아오거나 발해에 관심을 끌게 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이것은 문화 현상이다’라고 인정할 만했다. 그를 보며 나 이후의 젊은 세대는 어쩌면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런데 또 한 번의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이번엔 판이 다르다. ‘대한민국 최고’라는 수식어 따위가 붙을 일이 아니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그들을 지키기 위해 군대(Army)까지 결성할 정도의 파워를 지닌 아티스트의 탄생이다. ‘방탄소년단’, 이들은 폭발하며 연결되는 유니버설 네트워킹의 상징과도 같다. 흔히 이들을 비틀즈에 비견을 하기도 하지만, 기차를 타고 비행기로 날던 시대라면 이들이 과연 지금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오프라인으로만 공연하고 팬들을 만나고 그들의 물질적 신체가 직접 이동을 해야 한다면 아마도 아시아의 빅히트 정도로 멈췄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유튜브의 지배자이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 차트 1위를 몇 번 했느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노예가 사슬에 익숙해지면 자기 발목의 사슬을 자랑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어느 사슬이 빛나고 무겁고 비싸냐 등등. 그리고 이내 사슬에 묶여 있지 않은 자유인을 비웃는다. BTS는 국가의 경계도 언어의 장벽도 넘어서 버렸다. 그들은 영어로 노래하지 않는다. 이미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팬클럽 아미들은 방탄소년단이 한국어로 노래를 발표하면 불과 몇 시간 만에 자국의 언어로 번역해 유튜브와 SNS에 올린다.

 ‘BTS현상’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이처럼 국경을 허물어버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지구촌의 많은 제도와 문화는 국가를 기반으로 형성, 지속하였다. 언어와 민족성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온 음악은 국경을 경계로 강한 장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팝 음악이 전 세계에 보편화한 데에는 영어의 확산이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다. 영어권 국가가 경제력과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의 패권을 장악할 때 그들의 음악 또는 음악이 수반한 일련의 문화 콘텐츠들은 그에 비례하는 파괴력을 지니고 지구촌에 파고들었다. 이때에 약소국가들은 서구화가 곧 발전이라는 동일시의 오류를 겪으며 문화적 식민지로 전락하게 된다. 우리도 이런 과정을 여실히 겪었으되 어찌된 일인지 우리 안에는 ‘한국인의 정체성’이 공고하다. 이 이야기는 잠시 후에 이어가기로 하고. BTS는 어쩌면 지금까지 가장 완벽한 아이돌인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민과 주장에 솔직한 청년들이고 ? ‘We Are Bulletproof’, ‘IDOL’, ‘불타오르네(Fire)’, , ‘고민보다 Go’, 지식과 지혜마저 겸비하고 있으며- ‘anpanman’, ‘No more Dreams’, ‘등골 브레이커’, ‘134340’, 철학적이기도 하며 - ‘봄날’, ‘피땀 눈물’, ‘화양연화’,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감성을 느끼고 있다 - ‘좋아요’, ‘Anser : Love my self’, ‘데미안’. 국가와 민족, 언어, 인종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밀레니엄 세대로서 애초부터 자신들과 세계 간에 문화적 경계를 두지 않은 듯하다. 그래서 이들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타 집단과 공존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문화적 갈등이 적거나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BTS의 가사를 꼼꼼히 씹어보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또 한 번 놀라운 발견이 있었다. 그들이 대표곡 중 하나인 ‘IDOL’에서 뜻밖의 단어가 들린 것이다. ‘얼쑤 좋다’, ‘지화자 좋다’에 이어 ‘덩기덕 쿵더러러’까지.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일까.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이들을 프로듀싱한 방시혁 대표도 처음엔 이 아이디어를 듣고 놀랐다고 한다. “농담이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더 알맞은 추임새가 없더란다. 뮤직비디오에는 한복과 북청사자놀음, 팔각지붕의 정자까지 나온다. 굳이 한국적인 것을 넣으려고 해서 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제일 잘 어울렸다고 했다. 이들의 경계 없음은 한국적 정체성을 표출하는 데에서도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한류’라는 용어 그 바탕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 세계를 설득하고 감동시켜야 한다는 책임감,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거나 향유해 보편성을 획득해야 성공이라는 부담감이 깔려있다. 때로는 이질적인 것에 대한 호기심, 타 문화에 대한 존중을 성공한 한류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짜 한류’는 ‘한류’의 경계를 뛰어넘은 무엇이 아닐까?

 아들뻘의 BTS 때문에 아버지 세대가 바짝 공부를 하게 되는 요즘이다.

 김차동 전주MBC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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