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투구(泥田鬪狗)의 셈법을 보며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셈법을 보며
  • 송일섭
  • 승인 2018.10.25 17: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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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투구(泥田鬪狗: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개)’란 말은 중국에서 유래한 말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만든 말이라고 한다.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가 삼봉(三峰) 정도전에게 ‘조선8도 사람들의 성품’에 대해여 물은 일이 있는데, 그때 정도전이 처음 쓴 말이다. ‘이전투구(泥田鬪狗)’라는 말이 ‘함경도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하자 함경도가 고향인 태조 이성계는 못마땅해 했다. 그러자 삼봉 정도전은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개처럼 이 지방 사람들의 강인함 성품’을 이르는 말이라고 둘러댔다는 일화가 전해 온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또는 명분이 서지 않은 일로 볼썽사납게 다투는 것’을 비유한 말로 쓰이고 있다.

이런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논란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곳이 정치권이다. 명백한 잘못이나 실수에 대하여 일말(一抹)의 성찰이나 반성은 보이지 않고, 되레 상대방의 허점이나 약점을 들어 끝없이 싸움을 이어가는 꼴이 흡사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개‘를 연상하게 한다. 이런 싸움의 결말은 어느 쪽이 더 낫고 잘한 것인지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애매해진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는 것으로 결론짓게 된다는 점이다. 이전투구(泥田鬪狗)에는 이와 같은 요상한 셈법이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정치가들은 이런 셈법을 즐겨 이용하면서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호도하기도 한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런 것’처럼 속편한 것은 없다. 어떤 잘못이 드러나도 서로 공격하면서 비난하다 보면 결국에는 둘 다 엇비슷한 ‘피장파장’, 얼마나 멋진 황금률인가. 상대방과 겨루어 특별히 불리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는다면 어떤 싸움을 해도 특별히 손해 볼 것이 없으니 얼마나 기막힌 조화인가.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정치판은 물론이고, 이해가 대립되는 각 분야에는 이런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셈법이 일상화되어 있다.

어떤 잘못이나 폐단이 드러나면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는 상대의 잘못이나 실수를 찾아내는 촉수가 잘 발달되어 있는 것 같다. 문제가 생기면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상대의 약점 찾기에 바쁜 것이 일반적인 생리인 모양이다. 그래서 상대의 약점이 드러나면 일단 싸움부터 벌이고 보는 것이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적당히 타협하거나 유야무야 끝나고 마니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큰 적폐 아닐까. .

이번 국정감사에서 핫이슈가 되고 있는 사립유치원의 비리만 해도 그렇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만, 이익집단의 엄청난 반격이 무서워서 감히 손대지 못한 ‘뜨거운 감자’였다고 한다. 한겨레신문에 실린 <‘하룻강아지’가 삼성보다 무서운 ‘벌집’을 건드렸다>는 기사 제목만 봐도 충분히 감지되지 않은가. 지금까지 사학비리, 유치원 비리, 연구비리 등 굵직한 교육비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금까지 어느 정권도, 어떤 국회도 이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적당히 함구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익집단들과 핏발 선 논쟁을 그저 피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정감사에 이 문제를 제기한 여당의원의 용기 있는 결단은 높이 평가될 만하다.

그러나 이후에 벌어진 상황은 그저 안타깝기만 한다. 경향신문에는 <한유총 “사립유치원이 교육공무원보다 깨끗....비리 공무원 실명도 공개하라”>는 기사가 실렸다. 한유총(한국유치원총연합회의 약칭)의 대단한 반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바야흐로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셈법에 들었다는 생각이다. 누가 진짜 더 세금도둑인가를 확인해 보자는 주장까지 하고 있으니 이 싸움의 끝이 어찌 될지 사뭇 궁금해진다.

그러나 상대방의 약점이나 잘못으로 자신의 발등에 붙은 불을 끄고 적당히 마무리하려는 태도는 옳지 않다.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싸움을 확산할 것이 아니라, 잘못이 있는 단체와 개인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필자로서는 누구 편들 것도 없다. 세금을 도둑질한 공무원이 있다면 그 책임을 져야 하고, 국민의 혈세로 지원한 유치원 운영비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면 이 또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전투구(泥田鬪狗)의 논쟁이 어쩌면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다고 항변하는 것’ 같아서 그저 씁쓸하기만 하다. 정부의 잘못이든, 사립유치원의 잘못이든 이번에는 과감하게 개혁하기를 국민들은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송일섭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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