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개입과 조언
재판개입과 조언
  • 유길종
  • 승인 2018.10.1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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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법농단 사례의 하나로 법원행정처 또는 법원행정 담당자들에 의한 재판개입이 문제 되고 있다.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법관은 구체적인 사건을 재판함에 누구의 지휘나 명령에도 구속되지 않는다. 우리 헌법은 제103조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여, 구체적 사건을 재판함에 있어서 법관 직무상의 독립을 보장하였다. 제105조에서는 법관의 임기제·정년제를, 제101조 제3항에서는 법률에 의한 법관 자격을, 제106조 제1항에서는 법관의 신분보장을 각각 규정하여 법관 직무상의 독립을 뒷받침하기 위한 신분상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사법권의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권력분립의 원리를 실현하고, 국민의 자유 및 권리의 보장을 위하여 공정한 재판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이다. 그동안 재판의 독립은 절대 침해될 수 없는 명제로 인식되어 왔다. 재판사항에 관한 지시나 개입은 금기사항이었다. 대법원이나 상급법원이 실시하던 감사조차 재판사무의 행정적 측면에서 이루어질 뿐 재판의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에 법원행정처장이 부산고등법원장에게 검찰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서 공판기일을 1~2회 더 진행하라는 취지로 전화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인다. 비록 재판의 결론을 지시한 것이 아니고 재판진행에 관한 요망사항을 전달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문제를 그렇게 해결하려고 한 것은 정도(正道)라고 할 수 없고, 명분도 떨어지는 개입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런데 재판의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공정한 재판을 확보하기 위한 것인 점에서, 재판사항, 특히 재판의 절차에 관한 조언이나 지적을 모두 부당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수석부장으로 재직했던 임 모 부장판사에 대하여 재판개입을 이유로 견책이라는 징계를 했고, 임 부장판사는 ‘정당한 사법행정권 행사’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문제가 된 사건은 원정도박 혐의로 2016년 1월 약식재판에 넘겨진 프로야구 오승환 선수 사건이다. 당시 김모 판사가 약식명령 청구된 사건을 정식재판에 회부했다는 보고를 받은 임 부장판사가 공판절차 회부 결정문 송달을 보류하고, “다른 판사들의 의견을 더 들어보고 처리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고, 김모 판사는 정식재판 회부를 철회하고 약식명령사건으로 처리했다고 한다. 대법원은 이러한 임 부장판사의 행위가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법관으로서의 직무상 의무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계한 것이다.

 사실 약식명령이 청구된 오승환 선수의 단순도박죄는 법정형이 벌금형밖에 없다. 정식재판으로 진행하더라도 벌금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는 사안을 정식재판에 회부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을 목전에 두고 있던 오승환 선수를 정식재판에 회부하여 적어도 4∼6개월 소요되는 공판절차를 진행했다면, 이를 두고 법원의 명분 없는 갑질이라는 비판도 가능했을 것이다. 형사수석부장이 이러한 점을 지적하고 사건처리의 절차를 조언한 것은 정당한 사법행정권 행사의 범주에 든다고 보아야 한다.

 필자는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사법행정권을 적절하게 행사하지 않고 수수방관함으로써 재판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는 경우를 더 많이 보게 된다. 좋은 재판을 위한 적절한 사법행정권의 행사를 재판개입으로 매도하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고, 이 점에서 임 부장판사에 대한 징계는 납득하기 어렵다.

 유길종<법무법인 대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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