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쑤의 한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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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10.1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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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민찬 화가, ‘금릉지몽(金陵之夢)’ 전시회

 

 9월 15일, ‘금릉지몽’ 그림전시회가 난징시 베이징동로 지우화(九華)미술관에서 개막되었다. 이번 전시회는 매화를 주제로 하였는데 작가는 1977년 한국 서울에서 태어난 윤민찬 화가이다. 현재 한국예원예술대 초빙교수로 근무하고 있으며 장쑤성 난징시화조화연구회 회원과 장쑤성 난징안진경(顔眞卿)서화원 위원을 맡고 있다.

 난징에 거주하고 있는 윤 화가는 이렇게 말하였다. “전시회 이름을 ‘금릉지몽’이라고 한 것은 중국과 난징이 저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난징에서 8년 동안 살았습니다.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마치 꿈을 꾼 것 같습니다. 슬펐던 기억도 기뻤던 기억도 있고, 잃었던 기억도 얻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까마득한 기억이지만 어제 일처럼 떠오르기도 합니다. 봄이 와서 매화가 필 때마다 그 속에서 위로를 얻곤 하였습니다. 때문에 매화를 통해 저만의 이국적인 감정을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윤 화가는 앞서 2016년에 한국 서울 인사동에서 국화를 주제로 개인전을 가진 적이 있는데 똑같이 ‘금릉지몽’으로 이름 지었다.

 중국에 오기 전에 윤 화가는 한국에서 세밀화와 중국화를 배웠으며 중국 고대화가의 작품을 많이 모사하였다. 윤 화가는 2005년에 처음 중국을 방문하여 시안미술대학교가 개최한 교류전시회에 참가하였다. 전시회가 끝나고 그는 재미있는 실크로드 여행을 시작하였는데 서쪽으로 둔황(敦煌)과 우루무치(烏魯木齊)를 관광하면서 중국 그림에 대해 한층 더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길에서 그는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칠순 노인을 만났는데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빛은 어린 아이처럼 밝고도 맑았다. 더할 나위 없는 인물화 소재였다! 노인은 매우 친절하였고 시진 찍는 것에 즐겁게 응했다. 서울로 돌아간 후 그는 노인의 사진을 바탕으로 창작을 진행하였으며 작품은 많은 호평을 받게 되었다. 지금도 그 노인에게 감사의 마음을 갖고 있으며 그때부터 중국인의 친절이 마음 속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서울에서 대학원을 졸업한 후 그는 창작하는 한편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 기간에 중국 전통 음악과 보이차를 접하면서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시안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중국을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2011년 그는 유서 깊은 육조(六朝)의 도읍 난징에 와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출발점으로 삼았다.

 난징에서 8년 동안 생활하면서 그의 ‘금릉지몽’은 차츰 현실이 되어 갔다. 난징에서 그는 신장 이리(伊犁)에서 온 관샤오닝(關小寧) 씨를 만났다. “그녀는 저에게 행운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는 난징예술대학교에서 겅젠(耿劍) 교수를 스승으로 모시고 3년 동안 중국 미술사를 전공하여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겅젠 교수는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밖에 저우지인(周積寅) 교수와 부인 왕펑주(王鳳珠) 교수도 매화 그림을 그리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저우 교수는 전시회 화첩에 서문을 써주기도 하였다.

 난징에는 유명한 매화산이 있다. 그는 해마다 산에 가서 매화를 관찰하고 그리는데 외관 상으로 매화의 운치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더욱이 옛 사람들의 정신적 경지를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때문에 평론가들은 그를 이렇게 평가하곤 한다. “그는 가끔은 명?청 시대 군자로 보이기도 하다가 가끔은 고려 시대 선비로 보이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흔히 먼산을 배경으로 매화의 고결한 품성과 범속을 벗어난 모습을 표현한다.”

  우창훙·吳昌紅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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