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마음챙김
차 한잔의 마음챙김
  • 이창숙
  • 승인 2018.10.14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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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38>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지 오래, 따뜻한 차 한잔이 생각나는 계절이 왔다. 우리는 매번 자연이 하는 일에 그저 따를 뿐이다. 할 수 있는 일은 따뜻한 의복과 난방, 먹을거리를 준비하는 일이다. 이 얼마나 단순한 이치인가. 중국 전국시대 유가 학자인 순자께서는 「천론 天論」편에서 “하늘은 인간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겨울을 없애지 않을 것이며, 땅은 인간이 먼 곳을 싫어한다고 좁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 군자는 소인들이 시끄럽게 군다 하여 행실을 그르치지 않는다”고 했다. 그들만의 운행질서에 따라 움직이니 인간 또한 인간만의 질서를 갖추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계절은 하늘이 낳고 인간은 그것을 운영한다. 운영을 게을리하면 재앙이 따른다. 이 모두 하늘의 뜻이 아니며 인간의 마음에서 온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멀리 달려왔건만 인간이 구하고자 하는 것은 거처할 따뜻한 집과 먹을거리와 사람과의 관계인 것 같다.

  현대인들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걱정과 불안감을 억누르며 살고 있다. 이러한 불안감을 줄이는 방법으로 명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만성적으로 높은 수준의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다.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뇌의 해마가 축소된다. 해마가 손상되면 일화나 의미기억이 감퇴 되는데,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 마음 챙김이 효과적이라고 한다. 명상이 전전두엽 영역과 편도체 사이의 연결성을 증대시켜 해마 영역의 회백질 밀도를 높이고 피질의 두께를 두껍게 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마음 챙김 상태의 사람은 계속해서 새로운 범주를 만들어내는 반면 마음 놓침의 상태의 사람은 기존 범주에 의지한다고 한다. 마음 챙김을 생활화하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스스로 새로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잠시 짬을 내어 조깅을 한다든지, 즐거운 사람과 전화를 한다든지, 피로에 대한 마음을 떨쳐냄으로써 숨은 에너지를 깨우는 방법이다. 사람을 지치지 않게 하고 그 자체로 신나는 활동이 되는 것이다. 평상시 차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면 차 도구를 갖추고 차 마시기를 시도해보는 방법도 있다. 차를 찻잔에 우려 마시는 것, 그것은 느리고 시간이 걸려 지금은 바빠서 할 수가 없어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기존의 범주를 깨고 잠깐 시도해보면 좋을 듯하다. 꼭 녹차가 아니어도 된다. 집안 어딘가 서랍 속에 넣어둔 차 한두 봉지쯤은 있을 것이다. 눈을 호강시켜주는 화사한 꽃차도 지금 가을 날씨에는 참으로 좋다. 차에는 몸에 좋은 성분도 많아 힐링이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나른하고 한가로운 날 서재에서 벗과 함께 차를 마시며 마음 챙김을 하는 조선후기 실학자인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시가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병약하고 가난하여 전통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으나 아주 총명하였다. 청나라 고증학 대가들의 저서에 심취해 고증학을 바탕으로 한 저서를 많이 남겼다. 정조의 총애를 받아 규장각에서 활동하였다. 다음 시는 벌레 소리 요란한 가을날 벗과 함께 차를 나누는 장면이다.

 “관헌에서 차를 마시며(觀軒茗飮)”

 청안 서안(書案)에 그대와 마주 앉아

 차 마시니 이야기도 길어지네.

 여뀌밭 벌레 소리 요란하고

 매미울음은 그늘에서 시원하네.

 가을 서재 한가한 날에 무료하고

 비 갠 주렴엔 새 볕이 따스하네.

 문득 선경(仙境)에 노니는 듯

 몸은 어느덧 물아(物我)를 잊노라.

 비 갠 뒤 가을날 서재에서 풀벌레의 요란함만 있는 적막함 속에 벗과 마주하며 선경에 드는 것은 이덕무의 마음챙김이 아닐까.

 글=이창숙 원광대학교 초빙교수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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