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의 첫출발이자 새출발, 익산
우리 역사의 첫출발이자 새출발, 익산
  • 김병용 작가
  • 승인 2018.10.10 1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99회 익산전국체전을 맞아 보내는 헌사]<하>

 길의 도시, 익산

 익산은 지금도 ‘길의 도시’다. 조선 시대 여산은 조선의 통영대로와 삼남대로가 분기하는 요충지였으며, 지금 익산역은 호남선과 전라선, 장항선이 모두 모이는 곳이다. 거의 공사가 마무리되고 있는 익산-포항간 고속도로까지 개통된다면 익산은 예전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한반도 서남부의 교통 허브로 자리잡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길이 늘 긍정적인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1915년 익산에 철로가 들어오면서, 누천 년 역사를 지닌 익산의 역사문화 공간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는 볼링공에 관통당한 핀처럼 흩어져 나뒹굴기도 했다. 그 파편들이 흩어진 자리엔 흩뿌려진 선혈처럼 식민지 수탈과 돌관(突貫) 산업화가 남긴 상처가 낭자하다.

 하지만, 다져지고 다져져 길이 더욱 탄탄해지듯 익산은 이 모든 시련의 시간들을 통과해 지금도 광주와 전주에 이어 호남 3대 도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 역사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도시, 익산이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당대의 터미널로 기능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가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어떤 깊은 저력이 익산의 지층에 뿌리박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충돌 혹은 새로운 창조

 2018년, 우리는 익산발 중요한 뉴스 2개를 접했다.

 먼저, 지난 1998년 보수를 위해 해체되었던 미륵사 탑이 20년 만의 복원 공사를 마치고 마침내 새단장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 1915년 익산을 철로로 밀고 들어온 일제는 익산 미륵사탑의 붕괴를 막는다는 이유로 탑신에 시멘트 칠을 했었다. 그 시멘트를 어렵게 벗겨내고 후손들은 역사과학적 상상과 현대적 미감으로 빈 돌탑의 자리를 채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렇게 다시 새단장된 미륵사탑은 639년에 건립된 그 탑인 동시에 2018년에 새로 세워진 탑이라고 할 수 있다. 무려 1,400여년 세월을 뛰어넘어 옛 석공과 오늘의 석공들이 하나의 탑을 두고 협력 작업을 했다는 것, 흔히 역사는 이어진다고 하지만 사실은 시간의 늪에 빠져 서로 망각하고 잊어버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2018년 미륵탑의 새단장은 우리 문화 역사에 매우 중요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역사의 계승 혹은 재창조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미륵사 탑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 익산 무왕의 묘가 최근 확정된 것 또한 예사롭지 않다. 마치 허물어진 미륵사탑이 다시 세워질 이 날을 기다리고 있다가 현신하듯이, 미륵사탑이 새단장을 마친 순간 그는 비로소 자신의 신분을 드러냈다. 익산 대왕릉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해 오랜 논란과 억측이 있었지만, 최근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는 이 왕릉의 주인이 620년에서 659년 사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함으로써 이곳에 백제 무왕의 릉이 있었다는 고려나 조선조의 기록에 확증을 더하게 됐다.

 고조선 준왕, 보덕국 사람들, 견훤왕도 있었지만 익산 사람들이 가장 큰 애정을 보인 인물은 누가 뭐래도 백제의 30대왕 무왕이었다. 미륵사지는 물론 왕궁리 일대에 이르기까지 당시 무왕은 익산을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조성했었다.

 그동안 시간의 지층 아래 깊이 묻혀 있던 옛 사람과 옛일들이 다시 햇빛을 받는 이 순간, 익산은 이제 세계문화유산의 도시이자 전통 위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도시로 거듭나게 됐다.

 익산은 오랫동안 ‘숨겨진 시간, 감춰진 역사’의 공간이었다. 오래 된 길을 새 길이 덮어가듯 익산은 그렇게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곁에 있었던 우리들의 오래된 고향으로 방치되어 있다가 이제 스스로 그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다.

 1,400여년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미륵사지와 무왕릉의 소식이 체전 참여자들을 통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널리 퍼졌으면 한다. 익산 백제가 기지개를 켜면 또 어디선가 가야 사람들의 소식이 들려오고, 마한과 진한과 변한의 흔적들이 드러나면서 우리 역사의 숨겨진 물줄기들이 우리 앞에 도도하게 밀려왔으면 한다. 그 계기가 우리 역사의 오래된 터미널, 이곳 익산에서 마련되길 바란다. 익산은 길의 도시였고 길을 나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 출발하는 곳이다.

 

 글 = 김병용 작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