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서예가 남정 최정균 선생을 그리며
진정한 서예가 남정 최정균 선생을 그리며
  • 오광석
  • 승인 2018.10.09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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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석이 끝나고 몇일 전 현재 전라북도 서예계의 원로인 우관 김종범, 아석 소병순 선생과 현담 조수현 교수, 이정 최혜순 선생 등과 고(故) 남정 최정균(南丁崔正均/1924~2001) 선생의 선영이 있는 임실군 지사면 금평리로 가서 선생의 묘소에 성묘를 하고 왔다.

 남정 최정균 선생은 석전 황욱, 강암 송성룡, 여산 권갑석 선생과 전라북도 서예계를 전국에서 우뚝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고 특히 원광대학교 서예과를 창설하여 많은 서예인을 길러내며 서예계의 번성기를 이끌었던 서예, 문인화의 대가였다.

 우관 김종범, 아석 소병순, 현담 조수현 교수의 스승이기도 한 남정 선생의 묘소는 뒤에 주산인 금산이 둘러싸고 있는 안옥하고 양지바른 좋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묘소 앞에 둘러서서 현담교수의 문집 발간 및 전시회 보고가 있었고 모두 전통 성묘법에 따라 재배를 올렸다.

 남정 최정균 선생은 1924년 4월 20일 임실군 지사면 금평리에서 출생했으며, 본관은 전주이고 호는 남정(南丁), 당호는 난석산방(蘭石山房), 문향제(聞香齊) 등을 사용하였다.

 남정 선생은 원광대학교를 졸업한 후 원광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였고 서예에 대하여 깊게 공부하고자 당시 대가인 소전 손재형(素筌 孫在馨/1903-1981)선생을 찾아가 서예공부를 하였다.

 남정 선생은 국전에 출품하여 1965년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국전에서 연 6회 특선을 하였으며 1975년도에는 더 큰 꿈을 갖고 익산에서 서울 부암동으로 거처를 옮겨서 난석산방을 차렸다.

 서울에서 다양한 용묵법과 운필법 등을 연구하고 습득하였으며 서화(書畵)가 하나가 되는 독자적인 조형성을 보였다.

 남정 선생은 자신만의 개성이 있는 작품을 보였으며 국전 초대작가,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등을 역임하면서 중앙에서도 꾸준히 활동하였다.

 특히 1998년에는 원광대학교에 서예과를 창설하여 그간 개인 서실에서 스승 1인에게 편협하게 실기 위주로 공부하던 전통적인 서예공부에서 이론과 실기를 체계적으로 지도하여 법고창신(法古創新)하는 제도교육으로 바꾸었다.

 남정 선생이 창설한 원광대서예과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 서예과로 명성을 날렸으며 30여년 동안 1200여명의 서예인을 배출시키는 등 한국서단에 크게 공헌하였다.

 퇴임 후에는 서예과의 발전을 위하여 많은 장서와 서화소장품 및 작품을 원광대학교에 기증하였고, 2001년 타계하여 고향인 임실군 지사면 금평리 선영으로 모셔졌다.

 남정 선생 타계 후 2006년 12월에는 부인 배수임 여사가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에 선생의 그림과 글씨 82점을 기증해 유작 서화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남정 선생의 노력을 후배 서예인들이 지키지 못하여 서예계의 침체와 더불어 2015년도에 원광대 서예과가 폐과가 되었으니 후배 서예인의 한 사람으로써 선생의 영전에 속죄할 따름이다.

 

글 = 원암 오광석(전라북도 미술협회 서예분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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