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풍요로운 한가위에 대한 소고(小考)
행복하고 풍요로운 한가위에 대한 소고(小考)
  • 이소애
  • 승인 2018.09.30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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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하고 풍요로운 한가위가 지나갔다.

  홍동백서, 두동미서, 좌포우혜, 어동육서, 조율시이 등은 대명절 추석 차례상 차리는 상차림 위치를 사자성어로 묶은 진설법이다. 가족 대화합의 만남이어야 할 명절이 차례상 차리는 일 때문에 화합은커녕 불화와 갈등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불평등한 가사노동 분담으로 며느리와의 관계가 불편해 졌는가를 성찰해본다.

 명절이 낀 긴 휴가를 해외에서 보내는 가족들이 많아졌다. 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의 외로움도 생각해 볼 일이다.

  가족들에게 노동 집약적인 음식 장만을 묵시적으로 강요하지 않았는가를 미안하게 느껴봄직도 하다. 세상이 그렇게 변화되고 있다. 자녀에게 나를 따르라는 명령보다는 이젠 부모가 가족 화합을 위해서 양보해야 할 시대적인 변화에 순응해야 한다.

  가족들이 모두 떠난 후 나를 기쁘게 한 물질적인 선물을 생각해 보았으나 마음 모퉁이에 낀 허전함을 달래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조용한 지인이 보낸 멸치 한 상자가 나를 뭉클하게 하였다. 곱디고운 마음이 가득 담긴 멸치를 보는 순간 그동안 내가 소홀하게 대하지나 않았는지 부끄러움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상자 안에 가득 채워진 멸치는 바쁜 나의 생활을 지레짐작이나 한 듯 멸치조림하기 쉽도록 다듬어져 있었다.

  아, 이 수고로움이 나를 감동시켰다. 이런 위로도 잠시, 정신적인 선물이 절실했다. 낡아빠진 양은 냄비의 소중함을 알아주는 라면이 되고 싶어졌다.

  명절 끝이라서 남은 음식 꾸역꾸역 밀어 넣듯 힘들고 무거운 생각을 털어버리고 희망적인 계획이라도 세워야 할 판이다. 군살을 빼는 상차림을 기억하고 실천에 옮기는 일이다. 그리고 혁신적인 변화를 통해서 자유스런 명절 만남을 이끌어 가는 어른으로 살면 어떨까 한다.

  요즈음엔 많이 편해진 건 사실이다. 송편, 갈비, 고기, 식혜 등 거의 집에서 만들지 않고 손쉽게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어서 좋아졌다. 연탄불에 전을 부치던 시절엔 가스냄새를 맡아가면서 장만을 했었다.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 말이 있어 온갖 솜씨를 부리기도 한 추석 전날 밤의 풍경이었다. 식혜와 동동주에 정성을 들이시는 어머니의 흰 무명 머릿수건이 아른거린다. 약과 정과 산자를 한 달 전부터 준비하시느라 시장을 드나들곤 했던 어머니의 달아진 고무신짝과 찢어진 치맛자락 끝이 눈물겹다.

  그래서인지 차례상이 간소화해지면 불효자식 같다는 어른들도 계신다. 정성을 담아 음식을 장만하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도록 노력하면 어떨까.

  추석명절이 돌아오면 어렸을 때의 내가 보인다. 어머니는 언제나 나에게 딱 맞는 옷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항상 소매와 치마가 길었다. 운동화 역시 발보다 커서 솜을 넣어서 발의 크기를 조절해야 신을 수 있었다. 그것도 좋아서 명절이 돌아올 때까지 머리맡에 놓고 잠을 잤었다.

  전주천에서는 서커스 천막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헐렁한 멜빵바지에 빨갛고 둥그런 큰 코에 하얗게 덧바른 얼굴로 어린 아이들을 유혹했었다. 완산칠봉 꼭대기까지 울려 퍼지는 나팔소리가 우리 집 담장을 넘나들면 저금통이 가벼워졌다. 어렸을 적 명절은 연극이나 서커스가 기쁨의 전부였다.

  이런 한가위에 가족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할 차례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차례상에 혼쭐이 나는 딸 며느리에게 변신해야겠다는 때가 온 것만은 사실이다.

  어렸을 때처럼 기다려지는 명절에 내가 있기를 바란다. 최고의 추석 선물은 가족이며 만나고 싶은 사람이다.

  웃음꽃이 피어나는 집이다. 풍요로운 웃음꽃으로 피어나기 위한 명절 뒤안길 소고였다.

 이소애<시인/전주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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