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여자의 마음을 파고든 모노드라마 ‘여자, 마흔’
[리뷰]여자의 마음을 파고든 모노드라마 ‘여자, 마흔’
  • 김미진 기자
  • 승인 2018.09.2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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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 나이 서른 즈음에는 뭐라도 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흔이 되면 안정적인 삶의 테두리 안에서 평온한 시간을 누리는 여유로운 여인의 모습을 그리고는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가 거울 속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 배우 이혜지가 10년 만에 선보여 화제를 모은 모노드라마 ‘여자, 마흔’에서 그런 나의 모습을 만났다.

 ‘여자, 마흔’에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여자의 모습이 등장한다. 인기 라디오 DJ로 활동하며 일도 사랑도 완벽함을 꿈꿨던 여자 하소연이 주인공이다. 여느 대한민국 여자들의 모습과 마찬가지인 모습이다. 그녀 또한 결혼과 출산 후,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경력단절을 경험하고 방송으로 다시 복귀하기까지, 그리고 복귀하고 나서도 험난한 하루를 보내며 피를 말리는 전쟁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여자, 마흔’은 디테일을 살려낸 극의 구성과 상황 전개, 무대 장치, 소품, 음악으로 여자들의 공감을 사기 충분한 장치들을 많이 보여줬다.

 마치 일상 속 흔한 여자의 모습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미세한 부분까지 꼼꼼하게 찾아내기라도 한 듯,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장면이 많았다. 직장에 출근하면서 단화를 하이힐로 갈아신는 모습이나, 고무장갑을 끼고 바쁘게 설거지를 하는 도중에도 아이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동시에 전화통화까지 하는 신공까지…. 여자만 공유할 수 있는 경험들이 가득했다.

 또한 작가와 연출, 배우, 객석까지 호흡이 딱딱 들어 맞으면서, 흐름이 끊기는 장면이 없었다. 무대 세트와 소품까지도 과하지 않게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라디오 공개방송 도중에 벌어지는 소동과 방송에서 풀어놓은 다양한 사연들은, 수다 그 이상의 수다로 이어지면서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빈틈없이 달려간 무대였다. 온에어에 빨간 불이 켜지면, 객석의 공기 또한 절로 환기가 됐다. 공개 방송 라디오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극 중간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면서 마흔 즈음의 신세 한탄을 하는 모습은 위트가 넘쳤다. 소품을 이용해 친구들로 순간 변신하는 설정을 무리 없이 소화해내면서 천상 배우 이혜지의 매력을 발산했다.

 그림자를 이용해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표현해 보인 장면은 여자만이 경험하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쉽고, 빠르게 이해시켰다. 엄마가 된 이상 기본적인 인간의 생존권마저 포기해야 하는 현실 속 모습과 어디서도 알려주지 않아 겪게 되는 혼란과 혼돈의 시간을 깔끔하게 정리해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이번 공연을 통해 연출가 이혜지로서도 한 단계 성장한 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수확이다.

전작 ‘여자 나이, 서른’에서의 무게감과 비통함을 덜어낸 ‘여자, 마흔’은 온화함과 여유로움으로 결을 달리했다. 무대 위 보통의 존재들과 눈을 맞추고, 입을 맞추면서 나 자신을 더욱 아껴야겠다는 다짐으로 남아 공연의 여운은 한 참 동안 계속됐다. 타임 아웃 따위는 무슨! 어차피 인생은 생방송이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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