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변한 것 그리고 변하지 않은 것
한국인, 변한 것 그리고 변하지 않은 것
  • 장상록
  • 승인 2018.09.2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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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두 명이다. 한 명은 시어도어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프랭클린. 시어도어는 러일전쟁 강화를 중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고 프랭클린은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다. 그런데 이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미국인에게 존경받는 대통령인 동시에 한국과 악연을 가진 인물이라는 사실이다. 필리핀과 조선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침략을 상호 양해한 ‘태프트 가쓰라 밀약’ 당시 대통령이 바로 시어도어다.

  그가 받은 노벨평화상은 조선 종말에 대한 국제적 타협으로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럼 프랭클린은 어떤가. 그가 얄타회담 당시 보여준 한국 문제에 대한 처리방식은 대단히 합리적(?)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필리핀은 자치정부를 세우는데 50년 걸렸다. 한국이 완전히 독립하려면 40년은 배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후일 미국과 소련에 의해 제기된 ‘최고 5년간 신탁통치’안은 나름대로는 최대한 배려한(?) 방식이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프랭클린 루즈벨트만 그렇게 생각한 것일까. 관련 해 얼마 전 읽은 윤치호 일기가 떠오른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윤치호는 조선이 일본 만큼 되려면 200년은 걸릴 것이라 적고 있다. 해방 후에도 윤치호는 자신의 신념에 대해 조금의 후회나 반성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해방이 조선인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대국에 의해 우연히 주어진 것이며 독립운동의 역할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얘기한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이 하나 있다. 그는 나름대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공존하는 방식에서 찾기도 하고 일본의 정책에 대한 비판을 통해 조선인의 권익을 찾기 위한 나름의 노력도 기울인다. 그중에서도 흥미로운 것은 그가 향후 조선 독립의 이상적 모델로 체코슬로바키아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인 윤치호가 200년을 얘기하는 것에 비하면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40년은 대단한 선심(?)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윤치호는 자신의 조국과 민족에 대해 왜 이토록 비관적이었던 것일까. 그가 혐오했던 것 중에는 조선의 식객과 혈연문화도 있다. 그는 게으름과 무책임이야말로 조선을 망국으로 이끈 주범이며 식객과 혈연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야말로 그 전형이라고 비판한다. 백번을 양보해 그렇다 해도 그가 언급한 200년의 갭은 쉽게 설명 되지 않는다. 다시 윤치호 일기를 읽던 순간의 내 기억을 복기해본다.

  그가 어느 날 일기에 종로 탑골공원에 있는 원각사지 10층 석탑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원각사지 10층 석탑을 본 일본군은 탑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 해체작업을 한다. 그런데 상부 3층까지 해체했을 때 작업을 하던 일본군이 급사를 하게 된다. 이것에 놀란 일본군은 신의 노여움이라 생각하고 탑의 해체작업을 중지하게 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해체된 상부 3층이 윤치호가 살던 당시에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그 3층이 원래 자리로 돌아간 것은 해방 후 미군 공병대에 의해서였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350년 이상 방치된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합리화 할 수 있을까. 이 일화는 윤치호가 얘기한 200년의 갭을 정당화하는 수많은 논리적 근거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오늘 한국인의 관점에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과거지만 엄연한 역사다.

 다이나믹 코리아. 그렇다. 내가 27년 전 탔던 유레일 패스 노선은 지금도 대부분 유지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1년 후 교통체계는 어떻게 변해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변한 것이 어찌 그뿐이겠는가. 테니스를 하인에게 시키고 자신은 시원한 그늘에 앉아 지켜보던 조선 양반은 코미디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다. 그런 한국인이 각종 스포츠의 열기에 깊이 매료된 현실은 또 어떠한가. 윤치호 본인이 원한 바대로 그가 오늘 대한민국에 온다면 그가 가진 본원적 질문을 다시하게 될 것이다. 통찰은 지식과 이성 너머에 존재한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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