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경성사범학교 입학생의 고백
1929년 경성사범학교 입학생의 고백
  • 정은균
  • 승인 2018.09.27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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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균의 학교뎐 13]

나는 1929년 경성사범학교에 입학하였다. 1929년 4월 4일 목요일 입학식이 거행되었다. 신입생과 학부모와 보증인 등 수백 명이 학교 행사장에 모였다. 직원과 학교장이 차례로 입장한 뒤, 전체 일동이 일왕 초상 앞에서 경례를 하고 기미가요를 합창하면서 행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다음 순서로 신입생 전체 이름이 하나 하나 호명되었다. 신입생들은 입학에 임하는 자세와 태도를 담은 입학 선서문을 낭독하였다.

우리들은 이에 입학을 허락받은 지금 일층 뜻을 굳게 하고 마음의 정성을 다하여 성지(聖旨)를 봉체(奉體)하고 성훈을 각준(恪遵; 일이나 말 따위를 정성껏 따르고 지킴)하고 지덕의 수양에 노력하며 졸업 후에는 전심 국가교육에 종사하고 실천궁행 사도의 발양에 노력하여 황은의 만일(萬一)에 보답할 것을 선서함.

나는 ‘성지’, ‘성훈’, ‘황은’ 들의 단어들을 낭독하면서, 선서문이 사도 수행에 전념하겠다는 예비 교육자로서의 다짐보다 일본 왕의 뜻을 받들어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말단 교육 관료로서의 태도를 기르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점을 생각하였다.

신입생 선서가 끝나자 학교장이 훈시하고, 교관들이 차례로 소개되었다. 교관 소개 뒤에는 재학생 생도 아동 총대(대표)의 환영 인사와 신입생 생도 총대의 답사가 있었다. 이어 부형 총대가 인사한 후 일동 경례와 학교장 이하 참석자들이 차례대로 퇴장하면서 입학식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4월 8일 월요일에 새 학기 첫 조회를 열었다. 직원과 생도들이 일사분란한 정렬을 마치자 학교장이 근엄한 동작으로 등단하였다. 전체 직원과 생도들이 학교장에게 경례하였다. 이어 생도 각대에서 학교장에게 인원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생도 선언 및 복창을 하고, 다짐과 엄수의 뜻을 담아 학교장에게 경례하였다.

계속하여 직원과 생도들은 어영봉안소에 요배(遙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왕을 향하여 절을 하는 것)하고, 권학의 노래(勸學の歌)를 합창하였다. 경성사범학교에서 직접 작사하고 작곡한 권학의 노래는 생도들이 일제가 서울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에 있는 대어신(大御神)을 섬기면서 국가에 봉사하기 위해 천황의 뜻에 따라 열심히 공부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나는 국가에 대한 헌신과 일본 왕에 대한 복종심을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메시지라고 이해하였다.

하늘 속에 멀리 세운 북한(北漢)의 높은 희망을 한 줄기 저 남산 봉우리에 진좌해 계신 대어신을 모시고 대애(大愛)의 깃발이 되어라. 국가를 위해 연마하는 건아의 진심을 본다. 즐거이 자 함께 연마하고 연마하라, 그 정신을.

권학의 노래 합창이 끝난 뒤에는 전체가 체조를 하고 학교장에게 경례를 하였다. 조회는 학교장과 직원 이하 일동이 퇴장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월요일이었던 4월 29일에 일본 왕의 생일날인 천장절 행사를 치렀다. 먼저 아동 생도들이 정렬하고, 학교장과 직원들이 착석하면서 의식이 시작되었다.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참석자 일동의 엄숙한 경례와 기미가요 제창, 어영 배하(御影拜賀; 일왕 초상 앞에서 삼가 공손히 축하하는 의식), 칙어 봉독이 이어졌다. 봉독이 끝나자 학교장이 길게 훈화를 하였다. 학교장은 일본 왕이 탄생한 것에 대한 감격과 애국애족을 위한 심신 단련, 건전한 교풍 수립, 단체 정신 진흥 등을 힘주어 말하였다.

11월 상순 학예발표회가 열렸다. 학예회는 주로 각 학과별로 1년 동안 연구하고 연마한 것을 발표하고 전시하는 자리였으나, 1929년에는 일왕을 기리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하는 행사로 치러졌다. 행사 시작 후 일본 왕을 찬양하는 노래를 합창하였고, 어대례(御大禮)에 대해 담화를 발표하였으며, ‘동궁전하 외유기’를 낭독하였다. 학예발표회의 마지막 순서로 기미가요 제창이 있었다.

학교 운동 행사는 몇몇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함께 개최하였는데, 5월 27일 해군기념일과 10월 1일 시정 기념일, 11월 3일 명치절 들이었다. 운동회 개회식은 생도 정렬, 학교장 입장, 경례, 학교장 개회사, 지기의 노래(志氣の歌) 제창, 우승기 반환의 순서로 거행되었다. 폐회식에서는 생도 정렬, 학교장 훈화, 경례, 노래(志氣の歌) 제창, 성적 발표, 우승기 부여, 학교장 폐회사, 학교장 내빈에게 인사, 만세삼창 학교장 발성, 산례(散禮), 학교장 이하 교직원 퇴장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운동회에서는 생도들이 체조과에서 익힌 운동과 기능을 중심으로 기본 체조와 열병 분열, 1만 미터 장거리 달리기 경주를 실시하였다. 또한 검도 시범과 대규모 중대 교련과 분열식을 실시하여 군국주의와 집단주의 의식을 주입하고 강화하는 데 열의를 다하였다. 나는 당시 교사들이 학교와 교실에서 질서와 절도 있는 생활을 강조하는 훈육에 남다른 열정을 쏟게 된 배경에 군사 훈련 같은 사범학교 활동 경험이 짙게 깔려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경성사범학교 생도로 산 기간 동안 가장 뚜렷하게 남아 있는 훈육의 기억이 철저하게 위계적인 절차와, 모든 의식과 행사 순서 때마다 반복적으로 실시한 경례라고 생각한다. 행사장 입장과 퇴장, 보고와 제창이 학교장, 교직원, 연습과 생도, 보통과 생도, 부속하교 아동의 순서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리고 모든 행사는 경례로 시작하여 경례로 끝났다. 나는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보통학교에 발령을 받은 후 모교에서 6년 동안 갈고 닦은 학생 훈육을 학교와 교실에서 철저하게 이행하였다.

 

정은균 군산 영광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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