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의 사회학
얼굴의 사회학
  • 최정호
  • 승인 2018.09.2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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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얼굴에 주어진 새로운 임무는 ‘소통’이다. 감각 기관에 표현기관의 임무가 추가되었고 이를 수행하기 위해 일정부분 추가 설계가 진행되었다. 살아있는 얼굴은 우리가 가장 흔히 마주치지만 신비로운 대상이다.

 우리는 타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즉각적으로 나이, 성별, 건강상태, 기분 등을 알아채지만, 타인의 내적 본질은 짐작하기 어렵다. 그래서 얼굴은 암호가 가득한 신호발생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얼굴은 놀라운 깊이와 무한한 색조를 띤 메시지를 발산한다. 언어보다 명료하지 않은 이 신호는 언어보다 섬세하고 복잡하다. 인간의 얼굴은 훌륭한 껍질이다. 그리고 나는 그 껍질의 수리공이다. 타인에 속마음을 알고자 하는 끊임없고 불가능한 욕망은 ‘관상술’이라는 근거가 희박한 기술을 살아남게 했다. 관상술은 얼굴구조를 정신과 혼동하고, 정신과 얼굴구조가 유전적 기원을 함께한다는 가정에 기반을 둔 셈이다.

 그래서 마치 관상술에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처럼 과장하는 것은 그 의도가 의심받을 만하다. 개인적으로 경험한 일을 일반화하려는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쉽게 현혹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얼굴이 육체의 영혼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얼굴은 사회적 동물인 우리에게 소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래서 우리는 얼굴을 곳곳에서 찾고, 얼굴은 우리를 사로잡는다. 얼굴로 이루어진 사회라는 우주에서 얼굴은 우리를 개체로 만들어 준다. 인간은 얼굴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존재이다. 얼굴은 타인과의 접점에서 최전방에서 활약한다. 얼굴은 신뢰할 만한 정보의 원천이자, 잡힐 듯하면서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다. 얼굴은 매력을 발산하여 유혹하는 미끼이고, 자신의 사회적 신분증이다.

 자신이 자랑하는 것인 동시에 부끄러워하는 곳이다. 얼굴은 인격의 담지자로 간주한다. 감추고 싶어하는 비밀이기도 하기 때문에 가면을 써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화장하고, 문신을 하는 이유이다. 또 미용성형수술(cosmetic surgery)을 원하는 이유이다. 얼굴의 아름다움과 선함의 연결고리가 가짜라는 잘 알면서도 정작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인식에 늘 복종하지는 않는다.

 사람들은 얼굴을 통하여 정보를 흘리기도 하고 감추기도 한다. 얼굴의 발생과 진화과정을 파악하는 것은 얼굴의 이해에 새로운 지평을 제공한다. 우리는 먼 조상과 가까운 조상 즉 진화의 과정에서 갈라져 나온 다른 포유류의 구조를 통하여 얼굴의 원형을 탐구해갈 수 있다.

 또한 인간은 자신을 감독하고 평가하는 자아라는 정신을 뚜렷하게 갖춘 종이 되었다. 화려한 윤리적 장신구를 갖춘 도덕적 동물이 된 것이다. 자연의 법칙 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몸을 그 법칙에 따라 변화시켜 자연의 법칙 밖에 존재하는 변덕스러운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켜야 하는 미용성형수술은 의사들에게 이중고에 시달리게 한다. 성형외과 의사는 인간의 욕망에 반응하고 응답해야 한다. 우리는 얼굴에 대하여 넓고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수술을 이해하고 수행해야 하며 동시에 ‘미감정 만족’이라는 환자의 주관적 판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성형수술이라는 행위의 정당성과 도덕적 존엄성은 비싼 수술비에서 오지 않는다. 성형수술의 본질과 한계를 자각하고, 끊임없는 자기성찰로 시작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자연(nature)과 자유(freedom)의 거대한 간극에 성형수술이라는 다리를 설치한다. 두 세계는 결코 만나지 않지만 또한 언제나 가깝게 있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착오 없는 수술을 하여도 자유로운 판단을 하는 자연 밖의 ‘수술받은 환자의 마음’에 ‘만족’( satisfaction)을 줄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료행위의 진단에 필요한 올바른 정보와 그 수술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보편적인 아름다움과 젊음의 정의와 그것의 기준을 세워야 할 것이다. 자연의 세계에 속한 얼굴이라는 물질성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는 미감적 만족(aesthetic satisfaction)이라는 정신의 세계로 건너가는 좁은 다리의 친절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심미(審美)가 자연과 도덕의 가교를 할 수 있다는 칸트의 희망대로 성형수술도 미감(美感)의 실행을 통하여 문명의 도덕화에 기여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스러운 기대를 해본다.

 최정호<최정호 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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