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가야는 변방이 아닌 중심이다
장수가야는 변방이 아닌 중심이다
  • 김미진 기자, 장수=송민섭 기자
  • 승인 2018.09.19 17:4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수군 삼고리 고분군에서 철제 고리칼과 가야시대 금제귀걸이가 출토되면서 장수가 가야사의 변방이 아닌 중심으로 다가서고 있다.

 이번 삼고리 고분군 출토유물로는 가히 토기박물관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신라, 백제, 영산강 일대의 마한계까지 다양한 지역의 토기가 대량으로 출토돼 철의 제국, 가야를 이룩하는데 장수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는 학계의 해석도 나오고 있다.

 삼고리 고분군은 장수에서 최초로 가야문화유산을 알린 중요 유적인 만큼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나온 결과의 의미 또한 상당하다는 분석이다.

 19일 장수군에 따르면 삼고리 고분군 발굴조사를 담당하고 있는 (재)전주문화유산연구원(원장 유철)이 이번에 조사한 3기의 무덤은 2017년 고분군 분포조사를 통해 추가적으로 확인된 7기 중 3기다.

 지난 6월에 발굴조사를 시작한 가운데, 3기의 무덤군에서는 수혈식석곽묘(竪穴式石槨墓) 11기, 토광묘(土壙墓) 12기가 확인됐다.

 여기에서는 가야계 토기류와 철기류를 비롯해 금제 귀걸이, 철제 고리칼 등 130여 점에 이르는 많은 유물이 출토됐다.

 2호분의 경우 2기의 석곽묘가 나란히 축조됐다. 1호 석곽묘에서는 금제 귀걸이와 옥 등의 장신구와 가락바퀴가, 2호 석곽묘에서는 철제 고리칼, 쇠화살촉, 쇠낫 등의 무기류와 재갈 등의 마구류가 출토됐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봉분 내에 여성과 남성의 무덤을 함께 만들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3호분에서는 석곽묘 7기와 토광묘 11기가 조사되었는데, 장수 가야를 기반으로 하는 재지계에 대가야와 소가야, 신라계 양식 등의 토기가 함께 부장돼 당시 장수가야는 주변 세력과의 활달한 교류가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에 출토된 금제 귀걸이는 원형의 장식이 달린 것으로 백두대간 서쪽지역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사례로 주목되고 있다.

 철제 고리칼의 손잡이 끝장식 형태가 오각형을 이루고 있는 것도 특징적으로, 분석할 기간이 필요하지만 전국에서 3점만 출토된 만큼 중요한 유물로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한 봉분 내에 수혈식석곽묘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토광묘를 배장한 장법의 형태가 최초로 확인되기도 했다.

 함께 출토된 유물과의 비교를 통해서도 주변지역의 여러 세력들과 교류관계가 있었음을 인식시켜주는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이날 현장설명회에 참여한 곽장근 군산대 교수는 “장수 가야의 하위계층인 백성의 무덤에서 금제 귀걸이가 출토됐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볼 수 있다”면서 “다양한 지역의 가야 토기들이 출토된 경우는 극히 드물어, 그야말로 다양성과 역동성을 보여주는 사례다”고 말했다.

 이어 곽 교수는 “장수 두메산골에서 여러 지역의 토기가 출토된 점에 대한 배경이 중요할터인데, 철이 필요한 소비자들이 물질을 가지고 생산지를 방문한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면서 “장수에서 생산된 철이 여러지역으로 나가게되는 유통의 거점으로 중심이 되었고, 인류 역사의 발전을 이룩한데 중요한 역할을 한 철의 가치와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3기의 무덤 외에도 주변에는 봉토가 남아있는 큰 무덤들이 더 분포하고 있어 추후 발굴조사가 이루어진다면 더 많은 장수지역의 가야문화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미진 기자, 장수=송민섭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