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지 않은 길
가보지 않은 길
  • 김차동
  • 승인 2018.09.19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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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버지는 농부였다. 입으로 들어가는 작물 중에 아버지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은 없었다. 쌀, 보리, 콩, 옥수수, 감자, 고구마, 배추, 무, 고추, 마늘, 참깨, 들깨, 상추, 파 ……. 문제는 그 모든 것이 아주 조금씩이라는 것이었다. 7남매의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의 농사. 자식이 많으니 웬만큼 거둔다 해도 벌린 입으로 금세 사라져버렸다. 그나마 조금씩 남는 것들 내다팔아도 학비는커녕 입성도 건사하기 어려웠다.

 내 키가 작은 것은 순전히 지게 탓이다. 그렇게 믿는다. 초등학교 4학년쯤 무렵부터 나는 내 키보다 큰 지게를 지기 시작했다. 앞으로 허리를 잔뜩 숙여야 겨우 땅바닥에 끌리지 않는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렸다. 방학은 자식들보다 아버지가 더 반가워했다. 개학날이건 소풍이건 운동회건 농사일과 겹치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학교도 가지 않고 새벽부터 밤까지 괭이질하고 지게를 져날랐다. 그래도 우리 집은 가난했다.

 농사만 지어서는 결코 살림을 필 수 없다는 걸, 당신과 같은 고된 생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던 아버지는 큰형을 일찌감치 도시로 유학 보내셨다. 덕분에 나머지 형제들은 더욱 고단해졌다.

 2. 1991년 미국에서는 특별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애리조나주 투손 사막, 한 억만장자가 2억 달러나 들여 지구와 똑같은 인공 생태계를 만들었다. 일명 인공지구 프로젝트 ‘바이오스피어2’, 인간이 화성에서 살 수 있는가를 실험한 것이었다. 약 4천 평의 부지에는 콘크리트와 유리로 만들어진 거대한 구조물이 세워졌다. 열대우림과 바다, 사막, 습지 등 지구와 똑같은 기후를 조성하고 다양한 동식물들도 넣었다. 유리천장으로 들어오는 태양빛으로 식물들은 광합성을 했고 산소를 내뿜었으며 동물과 인간들은 그 산소로 호흡하고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했다. 이곳에 들어간 8명의 실험참가자들, 이들의 생존 목표는 100년. 이들은 과연 실험에 성공했을까? 결과는 실패였다. 이들은 불과 2년 20분 만에 실험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실험자들이 바이오스피어2 내부로 들어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인공생태계의 산소 농도는 점점 떨어졌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들은 모두 엉뚱한 결과를 낳아서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다. 대기 이상으로 곤충들이 차례차례 죽기 시작했고 반대로 천적이 없어진 개미는 대량 번식하면서 식물의 괴사는 가속화됐다. 척추동물들은 식량 부족으로 집단 폐사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 실험자들 가운데는 과학자나 의사도 있었지만 누구도 문제의 원인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콘크리트였다. 건물을 이루는 콘크리트 덩어리 속의 석회 성분이 산소를 계속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3. 최근 김제시가 ‘스마트 팜 혁신 밸리’ 사업에 선정되며 이를 둘러싼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사물인터넷 기술을 활용해 농작물 재배시설을 관리하고 생산성을 증대하는 농장, 스마트 팜. 이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기대하는 쪽은 농촌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가족이 일손이 되는 시대가 아니기에 지금 농촌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농사를 짓는 게 불가능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외국인 노동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면서도 워낙 노동력이 없기 때문에 대안이 없다. 농작물의 재배 관리에 로봇화, 자동화가 도입되면 일손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를 가져오게 된다. 자동화된 농장의 운영은 누가 하나? 자연스레 젊은이들이 농촌에 돌아오게 된다. ‘농업 = 노동’이 아니라 ‘농업 = 4차 산업 혁명 기술’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젊은이들에게 도전할 의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우려하는 쪽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아직은 스마트팜 때문에 농촌에 돌아오는 젊은이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고 여전히 노인들이 농사를 짓는데, 이들에게는 외려 불편하고 어렵기만 한 기술이라는 것이다. 평생의 경험과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자본의 문제도 있다. 2018년 전라북도가 추진한 ‘청년 희망 스마트팜 확산 사업’에서 시설하우스 1동의 사업비 규모는 약 3,500만 원, 자부담 비율이 30%이긴 하지만 지원규모는 ICT 무경험자에 한해 최대 2동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익을 창출하려면 사업 규모를 확대해야 하고 그렇다면 본인 부담을 늘려 투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저마다 이렇게 규모를 확대하면 전체 생산량이 증가하기 때문에 가격이 내려가 수익률은 오히려 나빠진다. 막대한 마케팅과 자본을 투입할수록 큰돈을 벌고 소규모 자본가는 경쟁에 밀리고 도태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스마트 팜 혁신 밸리에 도전하는 농가는 대부분 소규모 자본가일 터, 이들은 다시 스마트 팜 시대에 자급자족으로 만족해야 하는 소농이 되고 말 것이다.

 기대와 우려, 그 어느 한 쪽의 주장이 온전히 옳다고 손을 들기는 어렵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래의 기술이고 도전이기 때문이다. 바이오스피어2의 실험자들은 겨우 2년 만에 인공생태계 밖으로 나오고 말았지만 그들의 실험이 100% 실패인 것만은 아니다. 그들의 실험을 바탕으로 복잡한 생태계를 이해하는 과정이 생기고 지구 기후환경 변화 연구에 도움이 되었고, 앞으로 우주 과학이 해결해야 할 목표 등이 생겼기 때문이다.

 스마트 팜의 생태계가 어떻게 변화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장밋빛 청사진이 그대로 실현될 거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스마트 팜은 이미 진행 중이기에 그들의 명과 암을 거울삼아 실패 가능성을 조금은 줄일 수 있다. 가보지 않은 길, 멈출 것인가 내디딜 것인가?

 김차동 MBC프로덕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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