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경영 수월성, 확고한 리더십에 달렸다
대학경영 수월성, 확고한 리더십에 달렸다
  • 김창곤
  • 승인 2018.09.16 15: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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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곧 조용해집니다. 4년마다 벌이는 굿판 아닌가요.” 예순 살 교수가 총장 선거를 둘러싼 학내 진통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올해는 간선에서 직선으로 환원되면서 봄부터 시끄러웠다. 처음엔 학생 참여가, 이어 직원 투표 반영률이 이슈였다. 최종 협상안에 직원들이 지난 주말 동의하면서 선거는 예정대로 내달 11일 치른다.

 캠퍼스가 정치판이 되는 것을 막자는 간선이었다. 간선도 여전히 편을 갈랐다. 환원된 직선엔 ‘민주’와 ‘자율’에 ‘촛불정신’까지 수반했다. 대학 전 구성원의 선거에 폐해는 그대로다.

 세계 대학들은 총장을 이렇게 뽑지 않는다. 미국만 해도 ‘공채’가 원칙이다. 대학, 지역사회 대표로 구성된 위원회의 심사와 면접을 거쳐 그 소견을 토대로 이사회(주립은 주지사)가 선임한다. 유럽에서도 선거로 총장을 뽑는 대학은 거의 없다. 총장은 과오가 없는 한 충분한 임기가 보장된다.

 조선이 병자호란을 겪던 1636년 문을 연 하버드대는 올해 29대 총장을 뽑았다. 개교 317년째인 예일대 총장도 23대째다. 하버드를 쇠락하던 대학에서 세계 일류로 도약시킨 사람은 40년(1869~1909)을 총장으로 재임한 찰스 엘리엇이었다.

 엘리엇 총장은 산업화를 뒷받침할 과학과 실용지식으로 강의를 개편하면서 고전 비중을 줄였다. 캠퍼스를 만들고 입시로 학생을 선발했다. 학생이 강의를 선택케 하고 학점을 매겼다. ‘최장수 신임’은 개혁의 울타리가 됐다.

 필자는 외부 친구들에게 고향의 보배들을 떠올리곤 한다. 전주 한옥마을과 완주 로컬푸드, 고창 복분자는 금세기 전북이 길러낸 명품들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연간 1,000만명이 찾으면서 구도심 재생 모델이 됐다. 고창 복분자는 ‘6차 산업’ 대명사이고 완주 로컬푸드는 농산물 소비에 새 지평을 열었다.

 이들 명품을 키운 토대 역시 지방자치가 보장한 임기였다. 1995년 이전 관선 CEO 임기는 짧으면 6월, 길어야 2년이었다. 사업 안목이 탁월해도 궤도에 올릴 시간이 없었다. ‘선택과 집중’을 가능케 한 건 안정된 임기였다.

 전주 한옥마을엔 재선 두 시장이 16년을 끈덕지게 매달렸다. 고창 복분자는 민선 첫 군수의 7년 비전을 3선의 다음 군수가 업그레이드했다. 완주 로컬푸드도 후임 군수가 흔들림 없이 매장과 단체 급식을 늘려왔다.

 대학도 리더십이 절실하다. ‘민주’가 호령하는 시대지만 리더십의 요체는 수월한 경영이다. 요동쳐온 한국 현대사, 짧은 이력의 대학 문화는 긍정과 수용에 인색하다. 서울대는 72년 역사에서 지난 6월 뽑은 27대 총장이 성희롱 논란으로 사퇴했다.

 잦은 총장 교체는 성장의 발목을 잡을 뿐이다. 전임 총장 사업은 ‘적폐’가 되기도 한다. 핵심 보직 교수들도 교체돼 인적 역량이 쌓일 수 없다. 지역 인구가 줄고 산업이 취약한데도 전북대는 개혁을 통해 지난 10년 적어도 평가에서나마 높은 랭킹을 차지했다.

 급변하는 시대, 교수도 평생 배워야 한다. 집행부 고충도 공유해야 한다. 미래 인재를 키우되 취직 맞춤 교육도 해야 한다. 제자들 앞에서 때론 학원 강사처럼 떠들고 산업 현장과 구직 일선에도 나서야 한다. 대학 공통 숙제다.

 전북대는 지역 거점 국립대다. 교육과 연구, 인재양성에서 지역과 동반하고 주민과 호흡해야 한다. 기업 애로 해소에서 기술 개발, 산업 육성, 시군 현안 해결까지 지역 사회와 다면(多面) 밀착해야 한다. 진리와 휴머니즘만으로 대학이 설 수 없다. 위기일수록 대학은 존립 근거를 명쾌히 해야 한다.

 죽음을 무릅쓴 신대륙 이주 16년만에 하버드대를 세우면서 청교도들은 소박하고 절실하게 그 뜻을 새겼다. “신이 우리를 뉴잉글랜드에 안전하게 인도해주신 뒤 우리는 집을 짓고 일용품을 만들었으며 신을 찬양할 처소도 마련했다. (중략) 우리 성직자들이 흙으로 돌아갈 때 글을 모르는 목사들에게 교회를 맡겨 놓는 일이 생길까 염려해 이 학교를 세운다.”

 김창곤<전북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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