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집값 절망하는 서울사람, 절망조차 못하는 지방민
높은 집값 절망하는 서울사람, 절망조차 못하는 지방민
  • 윤석
  • 승인 2018.09.10 17: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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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번뿐인 삶에서 엑스트라가 되고픈 사람은 없다. 삶을 이야기에 비유한다면 말이다. 절망적 이야기라도 그 주인공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출연한다. 무탈하지만 지루하게 사는 단역 주변인물보다 낫기 때문이다. 이는 서울 집값과 관련한 이야기다.

 #서울 집값이 심각하다. 비싼데다가 더 비싸질 거라고 한다. 대통령 지지율은 40%대까지 떨어졌다. 부동산 전문가, 경제학자, 관료, 정치인 모두 해법을 제시한다. 그게 어디 처음 들어본 말들인가. 단편적 처방들의 무책임한 나열이 대부분이다. TV를 켠다. ‘뛰는 서울 집값에 절망의 2030’, ‘청년들의 집값절망…’, ‘수도권 거주자, 절망의 끝은 어디인가’ 같은 헤드라인이 눈에 띈다. 서울은 현재 절망의 도시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차이가 결정한다. 서울에는 집을 팔려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많다. 집값이 비싼 이유다. 실수요와 투기수요 구별은 부차적 문제다. 실거주자에게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든, 서울은 오래전부터 살고 싶은, 집을 사고 싶은 도시였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사람들이 절망뿐인 서울에서 살려는 근원적 심리상태에 주목해야 한다. 안 그러면 서울 집값은 못 잡는다.

 #서울은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 TV, 신문, 영화, 책 같은 매체들은 서울 이야기를 우리에게 끊임없이 들려준다. 고통스럽지만, 매혹적 줄거리. 그 서울이야기는 미디어를 거치며 한국 전체의 이야기로 일반화, 보편화 된다. 매체특성에 따라 조금씩 가감이 있겠지만, 그 이야기의 원형 아마 다음과 같지 않을까.

 #힘들게 돈 벌어 겨우 집을 장만한다. 내 자식은 당연히 공부를 잘해야 하기 때문에 ‘강남 8학군’에 마련한 집이다. 다행히 ‘인 서울 대학’에 입학한 자녀가, 졸업 즈음 7전 8기 끝에 ‘재벌 그룹사’에 입사한다. 어찌어찌하다가 비슷한 조건의 배우자를 만나 결혼했다. 하지만, 아파트는커녕 다세대주택도 너무 비싸 집사기를 포기한다. 전월세 원룸을 전전한다. 힘에 부친 어린 부부는 매일 싸운다. 남자는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여자는 언제든 유모차를 끌고 ‘광화문 촛불시위’에라도 나갈 태세다.

 #현재 한국의 대표적 원형서사다. 이 이야기를 접할 때 서울 사람들은 그 고통에 공감한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가장 큰 사회문제에 본인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묘한 충족감을 느낄 거라고, 나는 추측한다. 유명한 이야기 속 고통받는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서울사람은 자신이 구조적 고통 속에 신음하는 밀레니엄 한국 시대극의 한 주체가 됐다는 자의식을 획득한다. 물론 그들의 실제적 고통에 비아냥거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단지 심리상태를 유추해보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 비수도권 거주자, 즉 지방민의 심리상태는 어떨까. 강남 8학군, 인서울 대학, 대기업, 광화문 촛불시위는 그들과 무관한 얘기다. 저 멀리 서울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학군보고 거주지를 옮겨본 적은 기억이 없고, 대학입학과 취직은 서울에서 해야 성공한 것이라고 믿어왔다. 10억 20억원 한다는 서울 아파트 사진을 TV화면에서 본다. 뉴스앵커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전달하는 서울청년의 절망감을 들으며 지방청년은 눈만 끔뻑인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는 이슈를 보며 절망조차 못한다. 이들은 한국사회에서 주변인, 엑스트라로 전락한다.

 #서울이라는 좁아터지고 독점적인 무대를 한국 국토 전체로 분산시켜야 한다. 내가 사는 곳이 이야기의 무대고, 내가 바로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모든 지역사람이 가져야 한다. 지역균형 발전의 핵심이다. 현재 서울청년들이 절망스럽다면, 지방청년들은 무기력하다. 절망은 딛고 일어서면 한 단계 성장하지만, 무기력은 생의 의지를 갉아먹는다.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느끼는 사회는 건강하다. 이슈가 통합되고, 담론이 집중된다.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서사의 주연이 되고 싶다. 서울 집값 문제 해결은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윤석<삼부종합건설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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