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그리고 새만금
뉴욕, 그리고 새만금
  • 이철우
  • 승인 2018.09.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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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 맨해튼은 오늘날 누구나 인정하는 세계 경제·외교·문화의 중심지이다. 이 맨해튼을 약 400년 전인 1626년에 네덜란드의 서인도회사가 원주민으로부터 나이프, 유리구슬과 같은 24달러어치의 장신구를 주고 샀다. 뉴암스테르담으로 불렀다가 1664년 영국령으로 바뀌면서 당시 영국 식민지 관리관 요크공의 이름을 따서 뉴요크로 명명하였다. 증권시장의 대명사 월스트리트는 1650년경 맨해튼을 원주민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경계선으로 말뚝과 나무기둥 울타리(wall)를 만든 데서 비롯되었다. 울타리를 따라 뻗은 좁은 길에서 물품의 거래가 이루어지다가 미국 독립전쟁 이후 거래의 중심이 점차 금융과 증권으로 이행되었다.

 인류 문명의 역사에서 세력이나 나라의 부침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지금은 서양의 우위가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기계공업이 실질적으로 발전하기 전인 18세기 중반까지는 경제적으로 유럽이 아시아에 뒤처졌다고 한다(후쿠이 노리히코, 『근대유럽의 발견』). 이언 모리스는 에너지 획득, 도시성, 정보처리, 전쟁 수행능력으로 구성된 사회발전 지수로 비교해볼 때 서기 541년부터 1773년까지는 동양이 서양보다 우위에 있었다고 주장하였다(『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고등학교 세계사에서 배운 대로 그리스 문명의 변방에 있던 로마가 세력을 팽창하여 세계 국가를 이루고, 근대사회로의 이행과정에서 대항해시대의 패권이 포르투갈, 스페인, 네델란드, 영국의 순으로 옮겨가는 등 국가의 흥망성쇠도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도시의 역사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사람의 왕래나 교역이 거의 없던 변방의 황무지가 극적으로 성장해서 한 나라, 나아가 세계의 중심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앞서 본 뉴욕이 대표적이지만 일본의 도쿄도 한 예로 볼 수 있다. 도쿄의 옛 이름은 에도(江戶)로서 교토가 일본 정치의 중심이었던 16세기 말까지 변방 바닷가의 늪지대에 불과하였다. 전국시대의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자신의 휘하에 들어온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견제하기 위해 근거지였던 나고야 대신 에도로 옮겨갈 것을 명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 바다 늪지대를 매립한 변방도시로 출발하였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다시 일본을 평정하고 1603년 통치기구인 바쿠후(幕府)를 에도에 설치함으로써 오늘날의 세계적인 도시 도쿄가 탄생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중국에서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에 따라서 1980년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오늘날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성장한 선전(深?)이나 1990년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중국 남부의 금융·상업 중심지로 등장한 푸동(浦東)은 초단기간 내에 현대적 대도시로 탈바꿈한 사례이다.

 대도시로 성장한 요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뉴욕은 바다에서 이어지는 주위의 강과 대륙횡단철도 등 유리한 교통여건이 경제 중심도시로 발전한 주요 요인이었고, 동경이나 중국의 선전, 푸동의 경우에는 양호한 물류여건(해운) 또는 거대 배후도시(홍콩, 상해) 등의 요소도 있었지만, 정부의 강력한 개발의지와 지원이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새만금은 국가가 새롭게 조성한 간척지이다. 면적은 광대하고 계획도 창대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서 공공주도 매립과 공항, 항만 등 기반시설의 조속한 구축 등이 국정과제에 포함되었고, 공공주도 매립을 실행할 새만금개발공사 설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가시화되고 실질적인 지원도 강화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미래에 대한 우리들의 확신과 의지이다.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산업, 새만금의 여건상 유리한 산업을 유치하고 중점 육성해 나간다면 새만금은 반드시 대한민국의 중추 도시로 거듭날 것이다.

 이철우<새만금개발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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