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이 무기가 되다
예술이 무기가 되다
  • 박인선
  • 승인 2018.09.0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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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슨 폴록 (Paul Jackson Pollock) 作 가을의 리듬(뉴욕메트로폴리탄 미술관소장)

권력을 이용한 예술인들에 대한 통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정보기관을 앞세워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를 흔히 보아왔다. 국가원수를 모독했다거나 선동했다는 이유로 예술가들이 박해를 받거나 통제의 수단으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재정적 지원을 차별화하는 행위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그뿐이 아니다. 권력에 우호적인 작가들을 화이트리스트로 분류해서 지원을 해왔던 것들이 밝혀졌다. 이런 문제는 언제부터 나타났을까. 아마도 어느 시대에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존재했던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격변기에 나타난 추상표현주의의 정보권력과의 부침은 예술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유럽사회에서 주연으로 자리 잡고 있던 유럽모더니즘이 쇠퇴기를 맞으면서 문화예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미국으로 자리를 옮겨지면서 추상표현주의가 대안으로 부상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는 미국의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자유주의와 개별적 취향을 드러내는 예술정신이었다.

거침없는 붓놀림, 뿌리고, 흩트리고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잭슨폴록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주류예술가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전후 미국은 무기력과 희망이 혼재한 상황으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가 미국의 대표예술로 자리 잡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형태도 없고 색, 면 분할로 그려진 그림들을 ‘저게 그림이냐?’는 비난이 쇄도했다. 전시회를 준비했지만 미국주류사회로부터 손사래를 당했다. 야심차게 준비한 배경에는 미국의 정보기관(CIA)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시회는 오픈도 못하고 철수해야만 했다.

전쟁은 끝났지만 냉전의 먹구름은 여전히 강력한 대치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소련의 사회주의에 기반한 사실주의 예술에 대한 미국의 우월함을 예술을 보여주기 위한 전략에 차질을 빚게된 셈이다. 그러나 시대적 변화와 새로움에 대한 욕구는 추상 표현주의의 활로를 모색해 주었다. 이런 움직임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손은 뉴욕현대미술관을 비롯한 미술관 관계자들과 단체들을 동원하였다.

미국 국내는 물론 유럽에서의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진행되었다. 바야흐로 추상표현주의가 새로운 역사의 장을 만들어낸 계기가 되었다. 생활고를 겪던 작가들에게 재정지원은 작업의 활력을 불어 넣어주었다. 자신들이 예술을 이용한 진영싸움의 수단으로 제공되었다는 것을 알 수는 없었지만 부지불식간에 나쁜 예술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냉전시대에 예술이 무기가 되고 말았다.

비록 정보기관이 이데올로기적 진영싸움에 이를 동원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추상표현주의는 아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예술에 대한 창의성과 자율성을 생각하면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의 논쟁도 그것과 다름 아니라는 생각이다. 예술이 괘도를 벗어나면서 순수성을 의심받게 되면 가치훼손을 넘어 존재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대목이다.


 글 = 박인선(정크아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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