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변화는 사소한 공감에서 시작됐다
새로운 변화는 사소한 공감에서 시작됐다
  • 이선재
  • 승인 2018.09.04 17: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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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개선은 매우 사소한 공감에서 시작된다. 1902년 설비회사에서 일하던 신입직원은 거래처인 한 출판사의 고민을 듣게 됐다. 한여름 무더위와 습기 탓에 종이에 변형이 생겨 도저히 인쇄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청년은 고민 끝에 이 난제를 해결할 기계장치를 고안해 낸다. 냉매를 이용해 온도를 낮추고 습기를 제거하는 장치, 바로 에어컨의 시작이었다. 인류 최고의 발명 중 하나라고 여겨지는 바퀴도 사소한 공감에서 비롯됐다. 무거운 짐을 옮길 때 그 밑에 넣고 굴리는 통나무인 굴림대를 이용하다가, 짐이 이동하면 뒤에 남는 불편함과 통나무이기 때문에 무겁다는 단점을 개선하고자 바퀴의 형태가 탄생하게 됐다. 그때의 사소한 고민과 발견이 지금 인류사회의 큰 이로움을 주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동안 사소한 불편함 때문에 안전에 소홀해 왔다. 안전이 지금 당장 눈앞에 드러나는 것도 없을뿐더러 여러 규제와 비용 탓에 그저 사소한 것, 불편한 것이라는 인식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엔 예전과 달리 각종 사고와 화재, 재난 등 안전이 화두에 오르고 있다. 소방에 오랜 기간 몸을 담고 있으면서 아비규환의 재난현장에서 무수한 고민들과 마주했지만 유독 요즘에 들어서야 안전사고에 대한 이슈가 많은 이목을 받고 있는 듯하다.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렸던 세월호 사고 이후 잊을만하면 순차적으로 발생했던 그 간의 재난 사고들로 ‘이젠 안전해야 한다.’는 사소한 공감들이 모여진 것이리라.

 지난해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와 올해 초 무려 46명이 사망하고 109명이 부상을 입은 밀양 세종병원 화재가 발생했다. 연이어 발생한 대형 참사들은 국민들로 하여금 화재에 대한 경각심을 넘어 공포심으로 다가오게 됐고 우리 사회가 이제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국민적 공감이 일었다. 이에 대형화재 참사의 재발방지 등 국민생명 보호를 위한 근본적인 개혁 방안으로 화재안전특별조사가 지난 7월부터 추진되고 있다.

 전라북도 소방본부는 다중이용시설 등 화재 발생 시 다수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시설 7,147개동을 우선적으로, 33개 반, 114명의 조사반을 편성해 화재안전특별조사에 임하고 있다. 또한 조사활동을 관찰하고 도민 눈높이에 맞는 의견 청취와 아이디어 수렴을 위해 피난약자(고령자, 장애인)를 포함한 38명의 시민조사 참여단을 구성해 조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기존 소방특별조사에서는 매년 10% 가량의 특정소방대상물을 샘플링 조사하였으나 화재안전특별조사에서는 모든 대상물을 전수 조사할 방침이다. 또한 행정 여건에 맞춘 겉핥기식 점검 방식을 탈피하여 실질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도록 건축, 전기, 가스, 소방분야 등 화재안전과 관련된 모든 구조적 시스템을 총괄 점검하게 된다.

 이전엔 없었던 조사를 받아들이기에 해당 관계자들에겐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화재안전특별조사는 시설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는 국민적 공감이 모아진 것이며,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건물 관계인의 책임 있는 자세와 적극적인 협조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그저 안전하고 싶은 사소한 공감이 모여 탄생한 화재안전특별조사 역시 안전을 향한 도약의 초석이 되리라.

 그동안 지나간 일들을 되짚어 보면, 역사를 뒤집은 사건들은 사소한 것들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굶주린 시민들이 궁전으로 몰려가 “배고프니 빵을 달라”는 말에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라고 말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일화는, 와전됐다는 설이 있긴 하지만, 당시 프랑스 왕궁의 현실 인식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줬고 그녀의 사소한 말 한마디는 프랑스 대혁명을 키워 왕정을 무너뜨리게 됐다. 결국 사소한 것 하나가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냈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 커다란 변화들은 사소한 것들에 대한 무한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안전한 나라, 더욱더 안전한 전라북도 이룩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무한한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면 되지, 시대의 여론을 괄시한 채 급한 불을 끄기 위한 반짝 시늉 화재안전특별조사가 되지 않도록 모두의 관심으로 커다란 변화를 이루어 내길 바란다.

 이선재<전북소방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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