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의 무죄
안희정의 무죄
  • 유길종
  • 승인 2018.09.0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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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14일 안희정 전 충남지사(53)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없고, 그 외에 피고인이 업무상 위력을 행사하여 피해자를 간음하였다거나 강제로 추행한 사실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이 판결에 대해 여러 비난이 쏟아졌다.

 첫째 비난은 제1심 법원의 ‘위력은 존재하였으나 행사되지 않았다’는 판단에 대한 것이다. 비난하는 측의 주장은 위력이 존재하였으니 행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은 억지이다. 형법 제303조 제1항은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해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해 위력으로써 간음한 자’를 처벌하고 있다. ‘위력으로써’라는 말을 ‘위력을 행사하여’라는 의미이다. 위력이 존재하였으니 위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은 논리비약이고 상식에도 맞지 않는 주장이다. 그 주장대로라면 상하관계에 있는 남녀가 서로 사랑하여 관계를 맺었더라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에 해당한다. 이 무슨 황당한 결론인가. 상사가 지위를 이용하거나 행사하였다고 볼 수 없는 경우라면 ‘위력으로써’ 간음하였다고는 할 수 없다. 상하관계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성관계를 법으로 금지하고 싶다면 ‘상하관계 성관계 금지법’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둘째 비난은 제1심 법원이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제1심 법원은 피해자가 거절의 의사를 명확히 표시하지 아니하고, 지인에게도 피해를 호소한 사실이 없고, 피해자의 이후 행동도 피해를 당한 사람의 행동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등의 사정을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이유로 들었다. 이를 두고 재판부가 ‘피해자다움’이란 신화에 매몰되어 가공의 피해자상을 설정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보통의 피해자와 다른 행동을 하였다면, 피해를 당하였다는 주장은 믿기 어려울 것이고, 그것이 상식이다. 성범죄만이 아니라 모든 범죄에서도 그럴 것이다. 피해를 입었다면서도 보통의 다른 피해자와는 다른 행동을 하였다면 그 사람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필자가 보기에 제1심 법원은 이러한 상식을 기준으로 판단한 것일 뿐, 피해자에게 특별한 ‘피해자다움’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여러 비난이 있지만, 그 비난들은 모두 피해자의 주장이 진실하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런 가정은 있을 수 없다. 피해자의 주장이 모두 진실하다면 재판은 왜 하는가. 재판은 누구의 주장도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누구의 주장이 진실하고 누구의 주장이 거짓인지를 증거로 가려내는 과정이다.

 필자는 가해자라고 지목된 사람들을 변호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다. 억울함에도 끝내 처벌을 받는 사람도 종종 보게 된다. 성범죄사건은 억울하게 처벌될 위험성이 더 크다. 성범죄는 객관적인 증거 없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의 진술이 믿을 만하다는 평가를 받는다면, 피고인은 객관적인 증거 없이도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처벌이 결정될 수 있으므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판단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형사법원은 지나치게 유죄추정적이고, 우리나라의 성범죄 재판은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를 지나치게 제약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성범죄 재판을 인민재판식으로 몰고 가는 분위기는 심히 우려스럽다.

 유길종<법무법인 대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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