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쑤의 한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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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3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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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오싱즈(陶行知)를 한국에 알린 임형택 씨

 

 중국 젊은이들이 ‘한류’에 푹 빠져있을 때 한국에서 온 임형택 씨는 중국의 유명한 교육자인 타오싱즈의 사상을 연구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의 유행문화와 공연은 모두 비슷해 심미적 피로감을 쉽게 유발한다고 하였다.

 임형택 씨는 한국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였으며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처음 중국을 방문하였다. 그후 우연한 기회에 타오싱즈의 사상을 접하고 중국을 알아가기 시작하였다. 지난 10년 동안 그는 중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였으며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난징, 항저우, 원저우, 창사, 선양, 톄링 등 중국 각지에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유창한 중국어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중국을 알아갈수록 유연한 국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베이징올림픽 전에 중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중국어를 한 마디도 못했고 이 나라가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는 베이징에 있을 때 올림픽 폐막식을 앞두고 곳곳에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 표어를 써 붙인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였다. 귀국한 후 그는 중국을 더욱 많이 알고 싶어 2009년에 베이징대학으로 와서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2012년에 그는 아버지를 여의게 되었다. 당시 그는 아버지의 친구분을 접대하면서 타오싱즈교육기금회 추이쭈잉(崔祖瑛) 집행회장을 만나게 되었다. 추이 회장은 임형택 씨가 『타오싱즈 전집』을 한국어로 번역 출간하기를 바랐다. 이로써 임형택 씨는 타오싱즈 사상을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인생에는 가장 중요한 고비가 두 번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처음 태어나서 인생의 시작을 알게 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인생의 끝을 보게 되는 것이지요.” 아버지의 별세로 그는 막막하고 허전하던 터라 곧바로 번역 작업을 맡아 착수하였다. 크게 고민하지 않고 내린 선택은 오히려 그의 삶을 바꿔놓았다.

 그는 중국 사람을 더욱 많이 사귀게 되었다. “과거에는 우리 문화밖에 몰랐고 중국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갈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는 중국인들이 식사할 때 나누는 이야기가 주로 역사와 문화라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현지의 역사와 문화를 모르면 대화에 낄 수 없었다. 그는 더 적극적으로 중국을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는 현재 중국의 미식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되었는데 예를 들면 민물왕가재가 난징의 별미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난징의 돼지껍질튀김국수를 아주 좋아한다.

 중국인들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타오싱즈 전집』을 번역하는 일이 훨씬 어려웠다. 중국어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예전에 타오싱즈 사상을 접한 적도 없었다. 그는 모교 서강대로 돌아가 정인재 교수님께 도움을 청하였다. 정교수님의 지도 아래 『타오싱즈 전집』의 45개 부분을 선택해서 매주 조금씩 읽은 후 교수님과 토론하고 번역본을 다시 고쳤다. 교수님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으로 마침내 2016년 11월에 『중국 현대교육가 타오싱즈』를 한국에서 출간하게 되었다.

 “생활이 곧 교육이다, 가르침과 배움과 실행의 합일을 이뤄야 한다, 행동은 앎의 시작이다.” 이는 타오싱즈의 교육이념이다. 타오싱즈교육기금회와 타오싱즈연구회의 한국 홍보대사인 임형택 씨는 교육이념을 직접 실천에 옮기고 있으며 중?한 문화 교류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는 쌍방의 자원을 더욱 잘 공유하기 위해 중?한 정보교류의 ‘고속도로’를 건설할 계획이다. 임형택 씨는 친구들이 한국 방송사에 많이 근무하고 있어 방송을 통해 타오싱즈를 한국에 널리 알렸다. 그는 또 한국의 좋은 교육프로그램을 중국에 수출하기를 바라고 있다.

  쉬완즈(徐宛芝) 글/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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