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감사의 계절 가을
가을, 감사의 계절 가을
  • 정영신
  • 승인 2018.08.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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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다. 이제 가을이다. 40도에 이르던 111년 만의 폭염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미크로네시아 전설의 족장이라는 태풍 솔릭과 필리핀의 야생 황소인 시마론의 큰바람 속을 지나 다시 또 가을이 왔다. 가을은 성숙과 풍요, 결실과 수확, 기원과 성스러움, 휴식과 즐거움, 피안의 풍경이며, 편안한 노년이라는 상징성이 있다. 또한 가을은 산야의 오색빛 만큼이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계절이다.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라는 시에서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이 비옥한 시간을 갖추게 하소서.//……처럼 가을은 하늘이 주신 햇빛과 비와 바람을 머금고 농익은 오곡과, 열매로 결실을 맺은 신의 말씀이 담긴 지상의 수확물 앞에서, 경건하게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기원의 계절이며, 한여름 그 무성하던 초록의 잎들이 풀풀 낙엽으로 사라지는 조락(凋落)의 무상함 앞에서 가장 진실한 모국어로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채우는 겸허한 계절이며, 화려해서 낭만적인 사랑의 계절이다. 그런데 그 사랑은 가장 아름답고 의미 있는 비옥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성스럽고 숭고한 가을 같은 사랑, 단 하나의 사랑이다.

 가을이다. 다시 또 가을이다. 가을은 여름을 인내한 온갖 거둠에 대한 감사의 계절이며, 신에 대한 감사, 하늘과 땅에 대한 감사, 세상 만물에 대한 감사, 나를 존재하게 한 부모와 조상에 대한 감사, 모든 소중한 존재들에 대한 감사의 계절이다. 감사는 하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기도다. 실제로 어느 말기암 환자가 자나깨나 “감사 합니다”를 반복했더니 기적처럼 암세포가 모두 사라졌다는 실화가 있다. 현자(賢者)들에 의하면 오늘은 어제 사용한 말의 결실이고, 내일은 오늘 사용한 말의 열매라고 한다. 또한, 내가 한 말의 95%가 내일 나에게 영향을 미치며, 말은 뇌세포를 변화시키고, 운명까지도 바꿔 놓는다. 또 말에는 각인(刻印)효과가 있어서 같은 말을 반복하면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사소한 것들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대하면 하늘이 감응하여 더 풍요로운 기적 같은 현실을 만들어 준다.

 가을이다. 풍요로움을 주신 천지만물에 대한 감사의 계절, 이 아름다운 가을에,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었던, 가장 소중한 나 자신에 대한, 내 온전한 신체에 대한 감사가 필요한 위안의 계절이다. 하지만 이산저산 여기저기 연노랑 진노랑 연주홍 진다홍 색색의 단풍이 온 천지를 물들일 환락의 계절 가을이 와도, 병상에 누운 채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가련한 이웃들이 있다. 이들의 소원은 엄청나게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이들의 소원은 그저 두 발로 걸을 수 있으면 좋겠고, 그저 밥 한 그릇을 맛있게 한번 먹을 수 있으면 좋겠고, 그저 고통 없이 깊은 잠을 한번 잘 수 있으면 좋겠고, 눈을 떠서 아름다운 이 세상을 단 하루라도 더 살다 갔으면 좋겠고, 귀로는 아름다운 새소리나 사랑하는 이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너무도 소박한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우리의 일상생활이다.

 가을이다. 하늘이 내린 감사의 계절, 감성의 계절, 예의 계절, 가을이다. 사실 평생 우리가 찾는 행복은 오히려 내 가까이 있으며,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닌 그저 땅 위를 걷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아침에 눈을 뜰 수 있는 것이 기적이며, 최고의 선물이고, 감사의 순간이다. 또 내가 매일 보는 두 눈은 그 의료적인 가치가 1억이며, 신장 하나는 3천만 원, 심장은 5억 원, 간 이식은 7천만 원, 팔과 다리를 대신하는 의수와 의족은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처럼 매일 마시는 공기나 물처럼 함부로 대하거나, 내 꿈과 멀어진 현실 때문에 소홀히 여긴 내 몸은 51억의 가치를 지닌 두 번 다시 만들 수 없는 성스러운 조물주의 고귀한 선물이다.

 이제 가을이다. 거둠과 기원, 감사의 계절 이 가을에는 세속적인 욕망과 온갖 부정적인 번민의 굴레에서 벗어나, 티 없이 순박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으로 그저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가을 닮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게 어떠한지.

 정영신<전북소설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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