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 핀 박항서 축구 다시 보기
베트남에 핀 박항서 축구 다시 보기
  • 송일섭
  • 승인 2018.08.30 15: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18 아시안게임 자카르타 팔렘방의 열기가 고조된 가운데 지난 29일 한-베트남의 축구경기가 열렸다. 아시안게임 축구 4강전인 한-베트남의 경기가 국민적 관심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까지만 베트남의 축구는 아시아의 변방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베트남은 지난 1월 아시아축구연맹 23세 이하 챔피언십에서 준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한 이번 2018 아시안게임에서는 파죽지세로 아시아 축구판을 흔들어 놓고 단숨에 4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바로 이와 같이 급성장한 베트남 축구의 이면에는 우리나라 출신 박항서 감독이 있다는 사실이다. 발음의 유사성 때문에 ‘바캉스 감독’이라는 놀림까지 받았던 그가 베트남에서 일약 ‘국민 영웅’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우리로서는 참으로 가슴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베트남의 축구를 한국의 지도자가 우뚝 견인해 온 것은 우리 한국 축구의 저력을 보여준 것이라고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도 될 만하다. 

 29일 오후에 열린 아시안게임 축구 4강전에서 한국팀이 베트남을 3:1로 이겼다. 우리나라가 승리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베트남 축구가 패배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가능성에 환호했다. 박항서 감독은 승리하지 못해서 베트남 국민들에게 미안하다고 하였지만, 베트남 국민들은 오히려 박항서를 더 응원했다.

박항서 감독은 히딩크 신화의 조력자로 4강 신화를 이뤄낸 주인공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2002년 월드컵 직후에 열린 부산아시안게임에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두 달 만에 경질되는 비운을 겪어야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동메달에 그친 성적이 그 이유였지만, 그 이면에는 비주류대학 출신으로 축구협회와의 마찰을 겪었던 게 그 원인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얼마나 서운하고 아쉬웠으면 박항서 감독 스스로 “앞으로 축구협회와 관련된 일은 절대로 할 마음이 없다”고 하였을까. 이 말속에는 축구계의 고질적인 병폐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그 후 그의 축구 인생은 험난하기만 했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감독도 아닌 코치로 후배인 최순호 감독을 보좌해야 했다. 갓 창단한 경남 FC 초대 감독이 되기도 했지만 오래 가지 못했고, 마침내는 상주 상무 감독을 끝으로 K리그를 떠나야 했다. 그 후 그에게 손을 내민 곳은 아무 데도 없었으니 얼마나 외롭고 회한이 차올랐을까.

그런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온 것이다. 바로 작년 10월의 일이다. 성인 대표팀과 U-23 대표팀까지 겸임하는 베트남 국가대표 감독이었다. 당시 베트남에서도 박항서 감독 영입을 놓고 냉담한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취임 3개월 만에 역대 최고의 성과를 내면서 ‘베트남 축구의 영웅’으로 부상하였다. 우리는 그를 ‘베트남의 히딩크’라 부르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29일 한-베트남의 경기에 즈음하여 주변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박항서가 이끄는 베트남을 응원하겠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내 주변에서만 일어난 일은 아닌 것 같다. 베트남의 해군장교 후보들이 우리나라 해군사관학교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그 해군사관학교에서는 베트남을 응원했다는 훈훈한 뉴스까지 나왔다. 그러고 보면 우리 국민 상당수가 아시안게임 4강전에서 베트남을 응원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여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단지 한 개인의 성공을 높이 평가한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박항서 감독이 보여주었던 그의 포근한 리더십, 그리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돌파 리더십에 대한 평가도 물론 담겨 있을 것이다. 한국의 고질적인 병폐인 지연, 학연, 또는 개인적 유명세를 걷어내고 선수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따뜻한 리더십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바로 2002년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가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서 선수 생활을 하지 못하고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 일본에서 배드민턴 지도자의 길을 걸어야 했던 박주봉 감독도 떠올랐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선수나 감독이 외국에 가서 성공하는 것은 반갑고 환영할 만한 일이다.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여 세계 어디에서든 자신의 꿈을 펼치는 것은 보기에도 좋고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고 연고주의의 희생자로 떠밀리듯 밀려나가 이룩한 이 악문 성공이라면 마음이 아프지 않은가. 이런 것이 어찌 스포츠계의 문제일까. 본질과 사명을 외면한 채 자기들끼리 챙겨주면서 주류로 나서는 일이 우리 사회에는 허다하다. 열정과 마인드, 실천과 행동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송일섭 시인, 칼럼니스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