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할 수 없는 원로의 충고에 대한 인식법
존경할 수 없는 원로의 충고에 대한 인식법
  • 장상록
  • 승인 2018.08.30 14: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존경하는 원로 언론인 한 분이 있다. 현직에서 물러난 지금도 그는 여전히 세상을 향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 사회 현안에 대한 그의 녹슬지 않은 시각과 문제에 대한 해법 제시는 원로의 존재 이유를 보여준다.

  당혹스러운 것은 내가 그의 모든 글에 동의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여전히 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글에서 내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두려운 한 가지는 내가 그의 모든 생각과 글에 모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져올 관계성의 위기이다.

 어쩌면 그것이 누군가에겐 표리부동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겐 회색주의자로 얘기될지도 모른다.

   나는 어떤 한 사람이 완벽히 신적인 존재일 수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나 그에 근거한 행위와 결정에 대해 어떻게 완벽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은 ‘수령 무오류론’이다.

  진영논리가 지배하는 사회는 두렵다. 최영미가 아니어도 시인 고은 주변에서는 오래 전 모두 알고 있던 일들이다. 그것이 어느 날 새롭게 등장한 것을 가장 적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진영논리다. 이문열이 오래 전 발표한 소설에 대한 반응 역시 다르지 않다. 동일한 사실에 대한 행위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달라지는 논리의 변화 앞에서 이성을 찾아가는 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도산(하와이) 안창호에 대한 존경과는 별개로 그의 행적에 대한 비판이 금기시 되는 사회는 닫힌 사회임을 부정 할 수 없다. 그의 호가 독도나 울릉이 아닌 하와이라는 것에 대해 실망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그가 지역감정의 화신이었다거나 독립무용론을 주창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역사는 검증하고 비판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또한 손병희가 독립운동에 대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신도들의 헌금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는 비판에 대한 검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옛 일에만 국한된 것일까. 우리 주변엔 숨겨진 고은이 더 이상 없는 것인가. 위대한 시인이 될 수도 있었던 고은을 오늘 진창에 빠트린 주범은 진영논리인지 모른다. 만일 고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처음부터 문제가 된 행태들에 대해 준엄하게 대처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진영논리가 가진 또 하나의 그림자는 동전의 다른 한 면에 있다. 존경하는 원로의 모든 것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듯이 존경할 수 없는 원로의 충고 모두가 버려야할 쓰레기는 아니다. 친일, 회색분자, 독립무용론으로 남은 윤치호.

  그를 존경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에 대해 친일 민족반역자라고만 얘기하는 것으로는 그의 전체모습에 대한 설명으로는 부족하다. 그는 60년 넘게 일기를 썼다. 처음 7년간 한문과 한글로 썼던 일기는 그 후 54년 동안은 영문으로 이어진다. 윤치호는 당시 최고의 스펙을 소유한 인물이었다. 젊은 나이에 미국, 일본, 러시아 등을 여행하고 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황제 대관식에 참석했던 민영환이 젊은 윤치호를 보면서 열등감을 숨기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 윤치호도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는 것엔 예외일 수 없었다.

  백인에 대한 그의 증오를 결정적으로 증대시킨 것은 상해에서 백인들이 걸어놓은 간판을 본 후였다.

  ‘중국인과 개는 출입금지’

  조선의 낙후된 현실에 대한 절망과 중국에 대한 혐오는 일본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찬사로 이어진다. 윤치호는 국적을 선택할 수 있다면 자신은 일본인이고 싶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한국인이 대외적으로는 호전적이지 않으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극단적으로 잔인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10%의 이성과 90%의 감정으로 움직이는 민족. 윤치호 일기 속 한국인에 대한 평가다. 윤치호가 살던 조선과 현재 대한민국은 다르다.

  하지만 민족의 연속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윤치호 일기에는 그의 한계와 함께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도 존재한다. 윤치호를 존경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그의 얘기 모두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