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책에서 정치와 경제학의 역할
경제정책에서 정치와 경제학의 역할
  • 채수찬
  • 승인 2018.08.29 17: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더위가 오래 계속되고 있는 요즈음 목도리를 허리에 두르고, 허리띠는 목에 매고 광화문에서 떠드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뭘 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니 만병통치약을 팔고 있다고 한다.

 경제정책은 정치와 경제학 (economics) 두 가지에 요소에 따라 이루어진다. 정치는 정책의 목표를 정하고, 경제학은 거기에 이르는 방법을 정한다. 필자가 경제정책 결정에 참여하기 시작했을 때 내심 놀란 것은 정치인들이 정치와 경제학의 서로 다른 역할에 대한 인식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경제학 안에서도 분야에 따라 서로 다른 분석 대상과 관점이 있어 역할이 나뉘어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책이 제대로 되려면 정치는 정치인이 하고 경제는 경제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는 꼭 그렇게 되지 않는다. 정치적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정치적 주장을 엉터리 경제학으로 포장하기도 하고, 의도는 좋은데 경제학적으로 보면 역효과가 날 게 분명한 정책을 밀고 나가서 실패하기도 한다. 경제는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수요와 공급, 그리고 그 이면에 있는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 그리고 기술력의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목표와 의도가 있어도 이를 달성할 수 없다.

 남한이 되고 북한이 된 것은 경제정책의 차이 때문이었다. 한 쪽은 개방적인 시장경제를 다른 한쪽은 폐쇄적인 공산주의 경제를 추구한 결과다. 경제정책 방향에 차이가 나게 된 것은 정치가 추구하는 목표가 달랐기 때문이었다.

 경제정책의 큰 테두리를 단순화해서 얘기하자면, 재정지출 같은 거시경제정책은 단기 정책이고, 산업정책 같은 미시경제정책은 장기 정책이다. 저소득층 소비 진작을 통한 경제활성화 같은 거시경제정책 수단을 경제의 구조를 바꾸는 장기적 성장전략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목도리를 허리에 두르는 것이요, 양도세와 보유세 인상과 같은 미시경제정책 수단으로 부동산 시장의 단기적 과열을 막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허리띠를 목에 매는 것이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는 경제정책을 밀고 나가면 단기적으로는 경제활동에 혼란이 일어나고, 장기적으로는 성장률이 떨어지고 국민의 생활수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한국을 포함하여 기술혁신을 통한 성장을 추구해온 나라들은 공통으로 소득 양극화 문제 해결이 가장 큰 과제였다. 어느 나라에서도 아직 여기에 대한 해법은 마련되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인내를 가지고 인과 관계를 제대로 분석하여 효과 있는 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고민 없이 만병통치약을 들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다.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면 양극화만 해결되는 게 아니고 성장도 덤으로 이루어진다고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런 부류다. 이들의 가장 큰 오류는 결과와 원인을 혼동하는 것이다.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고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날 방법은 없다.

 만병통치정책그룹의 또 한 가지 문제는 정책수단 선택의 실패다. 예를 들어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 정치가 경제법칙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예 국가가 법으로 최소 경제성장률을 보장하자고 들지도 모른다. 과장된 말 같지만, 이들의 정책조합을 보면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다.

 오래 계속되는 더위 속에서 오늘도 목도리를 허리에 두르고, 허리띠는 목에 묶고 광화문에서 만병통치약을 파느라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머지않아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불어와, 이들 이목 스카프는 목에 두르고, 허리 벨트는 허리에 매고 덕수궁 돌담길을 걷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채수찬 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