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훔친 발명가
예술을 훔친 발명가
  • 박인선
  • 승인 2018.08.24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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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作 아비뇽의 아가씨들(뉴욕현대미술관소장, 1907)
 지금은 혁신(Inovation)이란 말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필자의 기억으로는 1995년쯤에 국내 굴지의 외국계회사의 로비에서 처음으로 보았다. 품질개선, 생산성 향상에 주안점을 두고 시대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실천운동이었다. 이런 운동이 본격화된 곳으로 실리콘밸리를 들수있으며, 혁신기업가인 스티브잡스를 빼놓을 수가 없다.

 어느 날, 스티브잡스는 실리콘밸리의 많은 청중들에게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을 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는 피카소의 어록을 연설의 말미에 남겼다. 스티브잡스의 말을 듣고 난 많은 사람들은 그의 말에 동의 할 수 없다면서 비난의 화살을 쏘아 붙였다. 예술이란 창의력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의 명성에 비추어 모방을 당연시하는 발언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학문과 예술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들이 표절 논란에 휩싸여 사회적 공분을 사는 사건들을 보면 개인적 일탈이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게 된다. 이렇듯 스티브잡스의 행동을 동일시 한 사건이었다.

 20세기의 천재 화가가 모방을 인정하고 남의 아이디어를 통해 자신의 작품으로 표현하는데 주저 하지 않겠다는 피카소는 스티브잡스에게 어떤 인물이었을까?

피카소가 미술사의 새로운 아이콘을 선보인 것은 ‘아비뇽의 아가씨들’이라는 작품이다. 작품을 만들고 나서 얼마동안 그는 가까운 친구들에게조차 보여주기를 주저했다고 한다. 하물며 이런 작품이 미술사의 전면에 등장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 할 일이었다.

 작품 속에 비친 여인들은 해괴망측한 모습이다. 선묘는 거칠고 형태는 물론 조형의 기본조차 찾아볼 수 없었으며 르네상스 이후 500년 동안 불변의 자리를 지켜온 원근법도 무시되었다. 피카소는 작품제작을 위해 루브르박물관의 이베리아 ‘원시조각상’을 본을 떴으며 앵그르의 ‘터키탕’을 그림 속에 재조합하는 과정들을 거쳤다. 그는 수 백 페이지의 작품노트를 통해 작업과정을 소상하게 밝혔다. ‘이게 모방이다. 남의 아이디어를 훔친 것이다.’ 라는 피카소의 고백은 재창조와 재구성의 다른 표현이었다. 피카소의 이런 노력은 스티브잡스의 마음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오해를 불러왔던 스티브잡스를 이해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실리콘밸리의 기업가들에게 스티브잡스의 메시지는 영감을 얻는 계기였으며 그는 행동으로 옮겼다.

 스티브잡스는 전자제품매장에서 쇼핑하는 것을 즐겼다. 그곳에서 마주친 키친아트 믹서기의 모양을 매켄토시를 만드는데 응용하게 되었고 매킨토시는 제록스가 만들어놓은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활용해 만들었다. 여기에 터치 기술을 더해 아이패드를 개발했다. 모방과 재창조과정을 거쳐 전혀 다른 혁신제품들을 만들었다. 그의 유연한 사고는 예술적 영감을 통해 얻어진 결과물이었다. 자기분야와는 다른 천재화가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주장은 비약이라고 해야할지….

 스티브잡스는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얻어진 경험들을 많은 직원들과 공유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디자인에 기술을 구겨 넣으라’고 가르쳤던 그는 예술을 품격있게 훔칠 줄 아는 탁월한 발명가이자 시대를 견인하는 혁신적선구자였다.

 

 글 = 박인선(정크아트작가)

 작품 = 파블로 피카소 作 아비뇽의 아가씨들(뉴욕현대미술관소장,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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