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상피제‘(相避制)’ 도입, 왜 문제인가
‘교사 상피제‘(相避制)’ 도입, 왜 문제인가
  • 송일섭
  • 승인 2018.08.23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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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의 유명 사립고등학교에서 교무부장의 쌍둥이 자매가 문·이과에서 가각 1등을 차지하여 시험문제 유출 논란이 일어났다. 쌍둥이 자매의 지난해의 교과 성적과 학원에서의 수준 등이 알려지면서 시험문제 유출 가능성에 대한 의혹은 급속하게 증폭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8월 16일, 10명의 감사팀을 투입하여 시험문제 유출의 사실 여부와 내신 성적관리와 성적 처리과정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의혹대로 시험문제가 유출되었다면 참으로 경악할 일이다.

그런데, 교육부에서는 시험문제 유출 의혹과 관련하여 ‘교사 상피제(相避制)’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즉, 부모와 자녀가 한 고등학교에 다닐 수 없도록 제도화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근무하는 고등학교 교원은 1천 5명, 이들의 자녀는 1천 50명이라고 밝혔다. 이는 전체 고등학교 수 2천 360개교 가운데 23.7%인 560개교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다니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예방차원에서 나온 고육지책이라는 점은 이해한다. 그럼에도 이번 조치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상피제(相避制)’란 연고에 따른 파행을 막기 위한 공무원 배치 방식이다. 옛날에 지방관 등을 임용할 때, 연고(緣故)가 있는 지역에 가면 업무를 공정하게 처리하는데 문제가 있다하여 해당 관리의 출신 지역에는 임용을 제한했던 제도이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사문화된 제도인데 이를 학교에 도입하겠다고 하니 교육부의 발상이 놀랍기만 하다. 부모가 근무하는 학교에 자녀가 입학한 경우 또는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부모가 전입하여 온 경우, 학교에서는 부모와 그 학생이 직접적으로 교실 수업현장에서 만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자녀가 3학년인 경우, 그 부모는 1학년이나 2학년을 맡게 하는 등의 상피제(相避制)를 이미 적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제도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우리의 헌법적 가치와 충돌이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대한민국의 아이들 누구에게나 학교 선택권이 보장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자녀가 가고 싶은 학교인데, 부모가 근무하고 있다고 해서 못 가게 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교사라 해서 자신이 근무하고 싶은 학교가 왜 없겠는가. 그런데 자녀가 그 학교를 다닌다 하여 이를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서 강조하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간섭하는 것이 된다. 공립학교는 정기적인 인사제도를 통해서 어느 정도 이 문제를 흡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립학교는 전혀 그렇지 않다. 부모가 사립 특목고나 자사고 등에 근무한다고 하자. 자녀가 충분히 그 학교에 합격할 만큼 학력이 뛰어난데도, 이를 제한한다면 그것이 과연 교육적인가를 따지지 않을 수 없다. 또 농산어촌학교는 대부분 적고 작아서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작위적으로 부모와 학생을 떼어 놓아야 하는데 이것이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조치인지 묻고 싶다.

다음은 왜 고등학교만인가의 문제다. 내신 성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하기 때문에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초중학교에서는 성적 경쟁이 치열하지 않으니까 학생과 부모가 같은 학교에 있어도 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 그러나 부모의 후광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하게 처신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것 때문에 받는 일반학생의 상처 또한 적지 않을 수 있다. 그렇다면 공정한 여건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라도 초중학생들도 마땅히 상피제의 대상이어야 한다. 또 대학은 어떠한가. 대학교수 사회도 직장 내에서 출신학교를 따지면서 선후배로 얽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가 서울대 교수라서 자녀가 서울대에 입학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면 이 제도는 극단적으로 편협한 시각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과연 공정하고 타당한 제도인가. 상피제가 연고(緣故)에 얽힌 업무처리를 막기 위한 제도라면 왜 교육계만의 일인가. 시장 군수도 자신의 출신 지역에서는 출마를 제한해야 하는 것 아닌가. 연고(緣故)가 얽혀 있는 고향에서 무슨 일을 공정하게 하겠는가. 이런 논리라면 공무원들 또한 자신의 연고지에는 배치되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들은 연고(緣故)에 따라 업무를 처하는 것이 아니라, 법령(法令)에 따라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교육부의 한 관료의 입에서 나온 ‘민중은 개돼지’는 말과 겹쳐져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피제(相避制)가 어느 시대의 유물인가. 교육부의 시계는 여전히 과거 속에 잠겨 있는 느낌이다. 대안이 없어서 그렇다고 이야기할 일은 아니다.

그렇다고 시험지 유출 같은 불행한 사태에 대하여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표(師表)가 되어야 할 교단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난감하다. 그러나 결론은 간단하다. 공직을 수행하는 자는 그가 어디에서 근무하든, 맡은 직책이 무엇이든 “법령”에 의해서 공직을 수행하면 그만이다. 그 법령을 어겼을 때는 법령에 따라 엄격하게 조치하면 되는 것이다. 시장 군수가 그 지역 출신임을 따지지 않은 것은 그가 법령과 시민을 위한 충정(衷情)으로 일해 줄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교원에게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 만약 시험지가 유출되었다면, 철저하게 수사하여 관련자들을 모두 의법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차제에 내신 성적 관리 시스템을 더 강화할 필요가 있다.

 

   송일섭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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