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사유의 시간
전시, 사유의 시간
  • 채영
  • 승인 2018.08.21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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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균, 양유연 작가의 2인전 \'벽에 맴도는 소리\' 전시장 전경
 무더운 날씨가 삶을 지치게 한다.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은 항상 부족하다. 삶은 여유를 잃고 우리의 생각이나 판단도 단조로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럴 때 예술은 우리의 지친 일상을 위로하기도 하고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작품 앞에 서는 일은 잠시나마 현실의 무게를 덜어준다. 작품과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 정서적 환기가 일어난다. 작품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의 끝에는 삶에 대한 사유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 사유의 순간에 예술이 삶으로 파고든다. 예술은 삶 속에 감춰져 있던 참과 거짓의 세계를 드러낸다. 물론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서울 ‘의외의조합’에서 12일까지 진행되었던 신정균, 양유연 작가의 2인전 <벽에 맴도는 소리>(기획 문한알, 황은지)는 이러한 예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전시장 내부에서 두 작가의 시각예술작품들은 ‘우리 사회 속에 내재된 불안과 의식이 작동되는 지점을 추적’한다. 신정균 작가의 작업에서 북한청년의 호전적 시는 프랑스어로 번역되어 전시장에서 낭독되고 북한에서 김정일화(花)로 불리는 베고니아 꽃을 드로잉한 <베고니아와 그리기>와 노래방 영상과 같은<베고니아 부르기>가 전시장에 설치되어 있다. 양유연 작가의 회화 <어둠 속을앞장서 가는 한 사람>은 작품의 앞뒤가 모호한 채로 창가 앞쪽에 매달려 있다. 전시장 바닥에, 벽에 그리고 천장에 각각 걸려 있거나 놓인 회화들은 작가에 의해 조합된 신체의 상처나 밤의 그림자 등과 같은 이미지들이다.

 이들의 작업은 비교적 분명하게 그 대상을 드러낸다. 그러나 보이고 들리는 것 이상의 정보를 쉽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양유연의 회화에서 표면의 종이가 드러내는 질감과 스미듯 칠해진 물감은 어두운 화면을 더욱 모호하게 만든다. 관객에게 쉽게 인식되었던 화면 속 대상들은 점차 불완전한 사건들로 인식된다. 이는 신정균의 작품에서 베고니아 꽃과 프랑스의 언어가 북한과 연관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 수정되는 판단의 순간들과 연결된다. 전시는 인지했던 분명함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순간으로 관객을 이끈다.

 전시는 형식과 매체를 통해 기호들을 교란하지만 재현 대상이나 사건에 대한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상을 향한 시선의 태도나 이데올로기에 노출되어온 이념은 전시장 안과 밖에서 판단을 지배한다. 전시는 태도와 이념의 견고한 벽을 허물어버리지는 못하지만 인식과 판단의 불완전함을 드러낸 채 예술과 우리의 삶을 연결한다.

 

 글 = 채영(공간시은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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