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과 김지은
안희정과 김지은
  • 이정덕
  • 승인 2018.08.21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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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사는 안희정이 지사시절 위력을 이용해 비서 김지은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안희정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판사는 “피해자는 수행비서직을 수행하는 내내 업무관련자와 피고인뿐만 아니라, 굳이 가식의 태도를 취할 필요도 없이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의 상시적인 대화에서도 지속적으로 피고인을 지지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은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며 안희정이 피해자에게 위력을 행사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판사는 “위력의 행사에 의해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정도에 이르러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는 결과가 발생해야 처벌 가능하다”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무죄라고 했다.

 판사가 중년 남성이고 안정된 전문직에 있는 사람이라, 부하로서 상사가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해고되면 실업자가 되어 인생이 매우 막막해질 거라는 불안감을 느껴 상사가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따르게 되는 상황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고, 따라서 위력이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보인다. 즉, 상사가 부하의 자유의사를 억압하지 않더라도 부하가 상사의 말을 거부하지 못하고 싫지만, 성관계를 가지게 되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싫으면 싫다고 말을 했을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러나 상사가 나를 해고하거나 좌천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혹시 해고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상사가 시키는 것을 거부하기 어렵다. 해고되어 생기는 온갖 어려움에 대한 생각으로 참고 따르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사가 하는 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따르는 경우가 많다. 동의하지 않는 경우에도 상사의 의견을 좋은 의견이라고 아첨하는 경우도 많다. 다들 직장생활을 그렇게 하지 않나?

 상하관계에 의한 위력은 직장에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관계, 선후배관계, 교수-학생관계, 인기인-팬 관계 등 다양한 관계에서도 작동한다. 미국의 많은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학칙에 교수나 강사나 코치나 직원 등에게 자신이 가르치거나 지도하거나 행정적 이익이나 벌을 줄 수 있는 학생과는 학생이 동의하더라도 성관계를 금지하고 있다. 또는 모든 학생들과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대학도 있다. 상하관계에서 나타나는 성관계에는 위력이 배후에서 작동하며, 또한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사가 직접적으로 억압하지 않더라도 상사의 위력은 부하에게서 일상적으로 나타난다. 부하는 스스로 자기억압과 검열을 수행해 상사에 맞추려고 한다. 상사의 위력은 상사의 성격 때문이 아니라 상사의 권한 때문에 작동한다. 따라서 위력여부는 상사가 위력을 행사하려는 생각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부하가 어떻게 느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연애감정 없이 위세에 눌려 거부하지 못하고 관계를 가졌다면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당한 것이다. 약자가 더 강했더라면 그래서 안된다고 했다면 좋았겠지만, 약자에게만 그러한 책임을 지우면 안된다. 약자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강자가 성관계하지 말아야 하는 책임이 더 크다. 약자의 말 못함은 나무라고, 강자의 오해에는 무죄를 선고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부하가 상사와 친하게 지내고 상사에게 존경을 표한다거나 감사하다고 말한다거나 선물을 한다고 해도 위력을 느낄 수 있다. 존경과 위력이 동시에 존재할 수도 있다. 부하에게서 연애감정의 표현도 없었고 성관계 동의도 없었다면 상사의 위력이 작동한 것이다. 공정한 판사라면 약자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법을 형식적으로 운용하면 약자의 피해는 누가 구제하나?

 이정덕<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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