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은 지금 백제문화가 뜨고 있다’
‘전북은 지금 백제문화가 뜨고 있다’
  • 김형미
  • 승인 2018.08.20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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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들이 찾은 찬란한 백제역사문화
 백제의 유산 익산 미륵사지 석탑이 20년 만에 수리를 마쳤다. 국보 제11호로 등록된 국내에서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미륵사지 석탑. 단일 문화재로는 최장기간 동안 체계적인 수리를 진행한 사례가 되지 않을까. 해체에만 10년, 조립에만 4년이 걸린 작업이라 했다.

 전북의 문학인들이 문학평론가이자 시인인 정양 선생을 모시고 찬란한 백제역사문화를 확인하기 위해 익산으로 향했다.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 3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연일 기록적인 폭염으로 한반도가 타들어가고 있을 즈음. 정부에서는 재난 수준의 폭염 대책을 세워 강구를 하고 있지만 온열질환으로 사망자가 속출하고, 가축과 양식장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고, 농작물 피해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덧씌워진 무거운 콘크리트를 벗어 던진 우리의 역사를 맞이할 수 있는 기쁨 앞에서는 살인 더위라 이르는 폭염도 무색할 뿐이다.

 1300년이라는 녹록치 않은 세월이 흐르면서 노후된 석탑의 안정성 문제로 인해 늦은 감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일본이 덧발라놓은 콘크리트는 그 두께가 최대 4m, 무게만 185톤이다. 치과 치석 제거용 기구로 콘크리트 가루 한 알 한 알을 세밀하게 벗겨내야만 했던 20년 세월 또한 간과할 수 없는 시간이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 일본 학자들은 문화재 보전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 미륵사지에 대한 날림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미륵사가 ‘品’자 모양의 3개가 합쳐 만들어진 사찰이라고 했던 일본의 주장도 이로써 완벽하게 벗어 던져버린 기분이다. 어쩌면 지금껏 알게 모르게 우리 민족의 혼 깊숙이 박혀 있던 쇠말뚝 하나를 뽑아내버렸는지도 모른다.

 “몸서리치게 슬프게 울든 목이 터져라 기쁘게 노래하든 그것은 한 마리 새로서의 시인이 향유한 자유다. 다만 그 노래는 새로운 역사를 창조할 수 있는 데서만 의의가 있을 따름이다.”

  현존하는 최대 규모의 익산 미륵사지 앞에서 정양 선생은 말했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이라는 것 자체가 또 한 번 역사가 되어버린 곳에서 문학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고의 말이라 생각했다. 유적 발굴 조사단원들을 놀라게 했던 사적 87호로 지정된 익산 쌍릉의 대왕릉에 당도해서는 어느 누구도 말을 할 수 없었다. 100여 년 전 처음 이곳을 발굴했던 일본 학자의 보고서에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사람 뼈가 근래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무덤 속 방인 현실(玄室) 한가운데에 화강암 재질 관대(棺臺)가 있고, 그 위쪽에 있던 나무상자를 열어 보니 두개골 조각 등 인골이 가득 담겨 있었다고 했다.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과학적 분석과 추론을 통해 인골의 면면을 살펴본 결과, 7세기 초중반 숨진 60~70대 이상 노년층 남성의 것으로 드러났다. ‘삼국사기’ 무왕에 관한 묘사에서는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639년 작성된 ‘미륵사지 석탑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대왕폐화로 불린 기록도 있다. 이런 정황에 부합하는 당대 백제 왕은 600년에 즉위해 641년 숨진 무왕이 유일하다는 것이다.

 대왕릉을 둘러보는 우리들 중 누구라도 가슴에 펜대 하나씩 세우지 않은 사람은 없으리라.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릉 곁을 지키는 목백일홍 곁가지가 모두의 가슴속에도 하나씩 나눠지고 있을 터였다.

 대왕릉은 전형적인 백제 사비기 굴식돌방무덤인 횡혈식 석실분이다. 중앙에 있는 입구로 들어가면 대형의 화강석을 정연하게 다듬은 돌을 이용해 다면육각형으로 축조한 현실(玄室)이 있다. 그 안에서 시신을 넣은 널이 안치된 인골을 담은 나무상자가 발견된 것이다.

 이 밖에도 현재까지 조사된 사비기 백제의 왕릉급 무덤으로는 처음으로 건축물 지반을 다지기 위해 흙 등을 여러 겹으로 단단히 다지는 판축 기법을 사용해 봉분을 조성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고 한다. 이로써 그동안 무관심 속에 묻혀있던 쌍릉과 무왕, <서동요>를 둘러싼 역사적 수수께끼가 재조명된 것이리라. 그리고 무왕의 역사적 중요성을 깨닫게도 되었을까. 익산시 쪽이 적극적으로 쌍릉 발굴까지 추진하면서 백제사의 지평이 더욱 넓어지는 성과를 냈다는 평가들이 많다.

 그러나 최근 전북의 찬란한 문화유적이 국가차원에서 발굴·연구·조사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북은 백제뿐만 아니라 가야문화에 이르는 한반도 고대 역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는 다양한 고대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문적인 연구기반이 없어 타 지역 문화재연구소의 손을 빌어야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국립전북문화재연구소를 설립하고 전문 인력을 확충하자는 데 전북의 문학인으로서 목소리를 보태고자 한다.

 전북은 지금 백제문화가 뜨고 있다. 살인폭염 속에서 우리가 걸음한 역사로의 시간이 찬란하게 일어설 수 있도록 어서 큰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다.

 /김형미(시인, 전북작가회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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