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관의 전시공간 규칙 이해하기
현대미술관의 전시공간 규칙 이해하기
  • 김은영
  • 승인 2018.08.1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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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관의 전시공간은 서구 근대미술관의 역사와 큐레이팅 문맥 안에서 이해된다. 즉, 공간의 배치와 작품의 분석과 해석이라는 측면에서부터 대중 커뮤니케이션을 위주로 하는 관람자 체험의 관점까지 폭넓게 읽힐 수 있다.

 서구 미술관의 전시 공간은 1880년대에 와서 벽 위에 그림을 간격을 두고 한단으로 걸며 시대와 유파의 구분에 따라 미학적 균형을 이루어내는 진열 방식이 일반화되었다.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한데 묶어 미술사상의 견해를 제공하는 해석의 원칙 또한 19세기 중반부터 이어져 왔고 현재에 이르도록 대부분의 미술관 전시 디스플레이의 규칙이 되었다.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현대사진가 토마스 스트루스의 사진작품 <내셔널 갤러리1>와 <현대미술관1>에는 흥미롭게도 서양 미술전시구성의 전범이 되어온 공간의 규칙이 대조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런던국립미술관의 전시장을 찍은 사진 <내셔널 갤러리1>는 르네상스 화가 벨리니의 <초원의 성모> 옆에 비슷한 시기에 두 화가가 그린 제단 초상화가 단순히 대칭을 이루며 걸려있는 장면이다. 이 세 그림을 모아 놓은 큐레이터의 해석은 원래 화가의 의도와는 별개로 15세기 이탈리아회화와 관련된 구성과 주제를 병치시키는 전형적 방식을 보여준다.

 한편 뉴욕현대미술관을 찍은 <현대미술관1>에는 어두운 실내조명과 낮은 천장, 관람자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어떤 자극도 없이 작품만이 조명을 받는 공간이 보인다. 고요하고 초월적인 분위기에 에워싸여 관람객이 폴록의 페인팅을 관조하면서 미술을 체험하는 모습이 포착된다. 여기서는 큐레이터의 의도에 따르기보다는 관람자 스스로 작품에 절대적으로 집중하여 의미를 읽어내도록 설정된 공간임을 말해준다.

 스투르스가 포착한 폴록의 체험 공간은 마크 로드코의 ‘채플’에서, 제임스 터렐의 ‘하늘 공간’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많은 현대미술 전시에서 정교하게 의도된 미학적 체험을 제공한다. 그 공간에서 종종 관람자는 절대적이고 강렬한 정서를 유발하는 심적 상태를 경험하곤 한다.

 현대미술관의 순수미학적 공간 개념의 정수는 “화이트 큐브”라는 용어로 알려져 왔다. 이는 현대미술의 전시공간은 중세교회건물처럼 견고한 법칙을 따라 구축돼 있음을 의미한다. 외부의 세계가 들어올 수 없게끔 창문은 막혀서 벽은 흰색으로 칠해져 있고, 천정은 빛의 근원이 되고 있으며 예술은 자유롭고 그 자체의 생명을 지닌다는 규칙이다. 그러나 화이트 큐브로서의 전시공간이 중립적이고 순수한 공간임을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미술에 대한 사회적 신화를 생산하고 유지하고자 하는 이데올로기적 본질을 지니고 있음 또한 비판되어 왔다.

 1988년 미국의 아프리카예술센터에서 있었던 <미술/유물:민속유물로서의 아프리카미술>전시는 과거의 민속학적 유물이 현대미술 전시에 보여질 때 그 역사성과 사회문화적 의미가 고려되지 않은 채로 단지 미적으로 전시물을 관조하도록 유도해온 전시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여 전시사에 큰 획을 그었다.

 <미술/유물>전은 아프리카 민속유물을 여러 개의 전시실에 각기 다른 관점과 설명과 스타일을 재현하고 관람객들은 그것에 의해 교묘하게 영향을 받도록 구성하였다. 예로 한 전시실은 부족이 사용하던 사냥그물을 현대설치미술 작품처럼 낮은 단 위에 조명을 하고 경이로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다른 전시실에는 19세기 시대의 ‘골동품 전시실’을 재현하여 유물과 동물 표본 등이 혼합되어 흥미롭지만 별다른 미학적 의미는 없이 보여주었다. 이러한 시도로 전시장 안에 진열된 작품과 설치 방식이 미술관의 시각으로 선택된 견해이고 비평적인 입장을 전제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무엇을 하고 왜 그렇게 하는지를 관람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김은영<전북도립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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