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당 홍원주(幽閒堂 洪原周)의 그리운 차 향기
유한당 홍원주(幽閒堂 洪原周)의 그리운 차 향기
  • 이창숙
  • 승인 2018.08.1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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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35>
 전통과 문화란 무엇인가. 오랫동안 우리의 삶 속에 흐르는 정신과도 같은 것이다. 얼마 전 광복절 경축식이 국립중앙 박물관에서 거행되었다.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공간에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조금은 미세하게 변화를 감지하고 싶은 기분이다. 우리는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 길을 찾는다. 때론 과거와 마주하며….

  19c 전반에 살았던 여류시인 유한당 홍원주(幽閒堂 洪原周, 1791~1842-1854)의 시(詩)속에서 조선후기 사대부가 여성의 삶과 명문가 집안의 일상문화를 조금은 그려볼 수 있다. 홍원주는 홍인모와 영수합 서씨의 3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친정과 외가, 시댁 모두 명문가에서 평생을 지냈지만, 외로운 삶을 살았다. 남편 심의석은 3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으며 슬하에 외동딸만을 두었다. 대(代)를 잊지 못했으니 당시의 통념상 죄인과도 같은 삶이었을 것이다. 그런 연유인지 그녀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규방에서 조용한 삶을 살았다. 평소에 지은 시(詩)도 상자에 넣어두어 남에게 보이지 않았다. 이 모두 당시 사대부가 여성들의 규제된 삶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가 죽은 후에 그녀의 양아들과 사위가 문집을 펴냈다. 시댁 식구들에 대한 시정(詩情)이 없는 것으로 보아 외로움이 컸던 모양이다.

  반면 친정 부모와 형제에 대해 그리움을 시로 표현하고 있다. “꿈에 간 고향 집”이라는 시에서는 친정 부모님이 자신을 반기는 모습을 그리며 ‘어머니 옷자락을 끌고’, ‘형제들의 웃음을 나누는 즐거움’이 넘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아름다운 찻잔에 귀한 차 향기롭네’ 라는 차를 마시는 장면도 빠짐없이 등장한다. 그녀의 어린 시절 친정에서 생활이 얼마나 즐거웠으며 그리워하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음은 홍원주가 가족들과 함께 친정집에서 읊은 “연구(聯句)”이다.

 

  ... (전략)

  바람은 쉼 없이 풀피리 부네. 서로 보며 기뻐하여 마음껏 웃고 (족수당 홍인모)

  둥글게 앉아 술에 취하고 깨네. 붓을 휘 들어 좋은 시문을 짓고 (영수합 서씨)

  이루지 못하면 벌주로 술잔을 기울이네. 돌아 서 있는 나무 열매 늘어서고 (홍석주)

  반찬 맑은 소금으로 담그었네. 차 우러나니 시심에 젖어 들고 (홍길주)

  고운 손으로 타는 거문고 소리 맑네. 기쁘고 좋아 참으로 가히 즐기니 (홍원주)

  세월은 흐르고 머물지 않네. 하늘을 보니 은하수는 기울고 (홍현주)

  이 기쁨 영원하길 달 보고 빈다네 (족수당 홍인모)

 

  이 시는 홍원주가 근친(覲親)왔을 때 아버지 홍인모, 어머니 영수합 서씨, 큰 오빠 석주, 둘째 오빠 길주, 동생 현주와 함께 지은 가족 시이다. 온 가족이 달밤에 모여 술과 차를 마시며 거문고를 타고, 아버지는 이러한 기쁨이 영원하길 빌고 있다.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절로 연상된다. 아버지가 먼저 시를 읊어 열면 다음은 어머니가 그다음은 형제들 순으로 알맞은 시상(詩想)을 떠올린다. 가족의 화목한 자리는 명문가 홍인모 집안의 가풍인 듯 가족 모두가 시인이며 문장가가 되었다. 유한당 역시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했던 추억 속에 차 향기는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막내동생 홍현주에게”라는 시에서도 그녀의 마음을 동생에게 보내고 있다.

 

  ...(전략)

  차는 끓어 화로 불은 약해지고

  매화 향기는 규방에 깊게 스미네.

  사람 만나면 고향 소식 묻고

  아름다운 고향 소식 입에 담아 즐기네.

  ... (후략).

 

 / 글 =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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