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복숭아밭
할머니의 복숭아밭
  • 박성욱
  • 승인 2018.08.16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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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겋게 달아오르는 날씨> 여름이다. 태양이 작렬한다. 햇볕은 따갑고 사람들은 햇빛과 더위를 피해다닌다. 연일 섭씨 30도 안팎을 넘나드는 기온에 세상이 더운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이들은 그래도 상관없다. 시원한 실내든지 무더운 바깥이든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답답한 실내보다는 넓은 실외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다니고 싶어한다. 잡기 놀이랑 축구랑 곤충채집이랑 놀 것이 많다. 하지만 날씨가 날씨 인지라 바깥에서 조금만 뛰어다녀도 얼굴은 어느새 벌겋게 달아오르고 수돗가 수도꼭지에 머리를 대고 시원한 물로 더위를 식힌다. 수건으로 닦지도 않고 그냥 대충 도리도리 세차게 머리를 흔들면서 물기를 털어낸다. 윗 옷은 이미 온통 물에 젖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선생님과 약속한 것들을 잘 기억한다. 특히 그 약속이 자기들에게 도움이 되고 재미있는 것이라면 더 잘 기억한다. 선생님은 종종 잊을 수 있는데 아이들은 시간이 되면 약속을 지키라고 보챈다. 4월 복사꽃이 흩날리던 날 아이들과 복숭아 과수원을 갔었다. 과수원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고 복숭아가 익을 때 꼭 다시 놀러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와 아이들에게 약속했었다. 복숭아가 익을 때 꼭 다시 놀러 온다고 했다. 그날부터 심심하면 아이들은 복숭아 과수원 언제가냐고 자주 물었다. 아이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는 것처럼 복숭아도 뜨거운 햇빛 맞으면서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이제 제법 단맛도 올랐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간이 된 것 같다. 아이들이 또 묻는다.

“선생님 복숭아 과수원 할머니 만나러 언제가요?”

 

<동네 길 따라 걷기>

여름 나들이는 준비물이 참 많다. 더운 햇빛을 막아주는 모자, 피부를 보호하는 썬 크림, 물, 과수원에 풀이 많으니 긴 팔토시와 긴바지, 양산, 풀밭 야생 진드기 따위 해충을 막아주는 뿌리는 기피제 등 참 여러 가지다. 좁다란 동네 길을 따라 걷는다. 길 가장 자리를 따라 걷다보면 길 가운데로 가니다가 못 본 것들을 많이 보게 된다.

“와! 깻잎이다.”

“와! 가지다.”

“와! 옥수수다.”

 한 사람이 ‘와’하면 이 사람 저 사람이 ‘와’한다. 그때 승현이가 논을 가르키며 묻는다.

“선생님, 저게 뭐예요?”

“벼 말이니? 가을에 누렇게 익으며 거두고 방아 찧으면 쌀이야. 몰랐니?”

“네. 몰랐어요.”

이사 온지 몇 년 되어서 이 정도는 알고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승현이는 벼를 몰랐다. 우리 아이들 동네 길을 걷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주로 차를 타고 큰 길을 따라 목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일상이다. 등교할 때는 스쿨버스 타고 학교로 오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학교 끝나면 학원차 타고 학원 가고 학원 끝나면 또 학원차 타고 집에 간다. 동네 길을 걷다보면 이웃집 할아버지, 할머니, 아저씨, 아주머니도 만난다. 가끔씩 예쁘다고 과자 사먹으라고 용돈도 쥐어 주시기도 한다. 아주 가끔있는 행운이다. 차를 타고 빨리 왔다갔다하며 길가에서 사람만나기도 자연에 피고 지는 꽃들 만나기도 힘들다. 동네 길 걸으면서 다리에 힘도 키우고 사람들도 만나고 자연 속 생명들도 많이 만나면 좋겠다.

 

<할머니의 복숭아 밭> 동네 야트막한 야산 위에 4월에 복사꽃 피는 날 만나 할머니의 복숭아 과수원이 있다. 학교에서 출발해서 동네 길 따라 10여분 걸었더니 금방 도착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할머니는 계시지 않으셨다. 서울 아들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할아버지랑 함께 올라가셨다고 했다. 대신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복숭아 과수원에서 제일 예쁘게 생긴 복숭아를 하나씩 따가라고 하셨다. 할머니의 복숭아 과수원에는 복숭아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들깨, 고추, 참깨, 오이, 호박, 콩, 매실나무, 감나무, 은행나무 등 온갖 채소와 열매가 가득했다. 그래서 이제는 복숭아 과수원이 아니라 복숭아 밭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겠다.

복숭아가 이 나무 저 나무에 탐스럽게 열려 있었다. 햇빛을 잘 받은 복숭아들은 겉이 벌겋게 익어 있었고 향긋한 단내가 지그시 풍겨왔다. 아이들은 이 나무 저 나무를 찾아다니면서 가장 잘 익은 복숭아를 찾아다녔다. 그 때 한 아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여기 사슴벌레 있어요!”

“어디?”

 아이들 발이 더 빠르다. 아이들은 금새 모여들었다. 진짜 사슴벌레가 있었다. 현수가 조심 조심 잡아서 비닐 봉투에 넣었다. 숨을 쉬라고 비닐 봉투에 구멍을 여러 개 뚫었다. 복숭아 나무에서도 나무 진이 나온다. 사슴벌레는 나무 진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무 진이 나오는 참나무, 벚나무를 좋아한다.

“할머니는 농약을 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농약하면 곤충들 다 죽는데요.”

 요즘에는 여기 저기에서 사슴벌레나 장수풍뎅이 같은 벌레를 많이 판매한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서다. 그런데 아이들이 야생에서 살아있는 사슴벌레를 직접 잡는 일은 쉽지 않은 경험이다. 사슴벌레가 나오니 아이들 분위기는 한층 더 달아올랐다.

“와! 진짜 좋겠다.”

 할머니 복숭아 밭에는 맛있고 향긋한 복숭아도 있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사슴벌레도 있다. 할머니 복숭아 밭은 높은 울타리와 기둥이 세워져 있지 않고 울타리와 기둥 맨 위를 따라 쳐진 그물은 없고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지도 않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 내외 분 드실 먹거리, 인정이 많아서 이 집 저 집 나눠 줄 충분한 채소며 열매가 차고 넘친다. 물론 여러 가지 자연 친구들도 참 많다. 복숭아 밭이 인정 많은 할머니를 닮았다.

 

<함께 걸어가고 함께 살아가기> 빨리 가다보면 못 보는 것들이 참 많다. 바쁘게 살다보면 만나지 못 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 때로는 조용히 뚜벅뚜벅 걸으면서 많이 보고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 어디를 빨리 가야 한다고 서두르는 마음이랑 내가 가지고 누리고 하고 싶은 것에 매달리는 마음이랑 잠시 내려 놓고 동네 길 한 번 쭉 걸어 보았으면 좋겠다. 새롭게 만나는 자연이랑 몇 번 봤지만 조금 서먹한 사람들이랑 눈짓으로 나마 살며시 인사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잊고 지내온 따뜻한 이야기들이 반갑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함께 걸으면서 함께 이야기 하고 함께 나누고 그러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다.

 박성욱(구이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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