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석이 되어도 만나지 못하는 견우와 직녀
칠석이 되어도 만나지 못하는 견우와 직녀
  • 최정철
  • 승인 2018.08.13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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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의 정인절 밸런타인데이(Valentine Day, 2월 14일)에 대응해서 대부분 사람들은 음력 7월 7일인 칠석을 동양의 대표 정인절로 내세운다. 1년을 기다렸던 견우 목동과 직녀 처자가 눈물의 은하수 상봉을 한다는 전설은 과연 칠석을 정인절로 자리매김 시켜왔을 만하다. 그러나 실체를 알고 보면 견우와 직녀는 운명적으로 만나지 못하는 사이이기에 기실 정인절로는 걸맞지 않는다. 

 음력 7월 7일 칠석이 되면 밤하늘 중천에 밝은 별이 뜨는데 곧 직녀(織女, 베 짜는 처녀)별이다. 직녀라는 이름은 귀뚜라미와 연관되어 있다. 귀뚜라미의 중국식 이름이 ‘길쌈을 재촉하다’ 뜻의 촉직(促織)이다. 음력 7월 가을이 시작될 즈음 여름철 벌레들이 사라지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녘으로부터 들리기 시작한다. 옛사람들은 이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가을이 시작됨을 알고 겨울 대비에 들어갔다. 수확으로 식량을 비축하고 중요한 일을 한 가지 더 했으니 바로 겨울옷 준비였다. 수확이 남정네들의 일이었다면 겨울옷 준비는 여인네들의 몫이었다. 여인네들은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시점으로 길쌈을 시작했다. 귀뚜라미는 음력 8월 한가을이 되면 추위를 피해 점점 인가로 몰려들며 울어대고 여인네들은 그 울음소리에 쫓겨 길쌈과 옷 만들기에 부지런을 떨어야 했다. 그래서 귀뚜라미의 이름이 길쌈을 재촉하는 촉직이 된 것이다. 이때에 별 하나가 등장한다. 밤마다 길쌈을 하던 여인네들이 어쩌다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중천에 떠서 밝게 빛나는 별. 여인네들은 그 별에다 자신들을 투영하고자 직녀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제 견우(牽牛, 소를 끌다)별이 등장할 차례다. 직녀별이 중천에서 밤하늘 주인공 행세를 하고 있을 즈음 직녀별 맞은 편 은하수 건너 동남쪽 하늘에도 밝게 빛나는 별 하나가 보인다. 그것이 바로 견우별인데, 견우별의 탄생 이야기도 재미지다. 옛날 중국의 제후들은 해마다 연말 섣달이 되면 하늘의 상제에게 올리는 대전(大典)이라는 제사를 거행해야 했다. 관리들은 음력 3월 즈음 일찌감치 희생(犧牲)으로 쓸 소 양 돼지의 어린 것들을 골라내고 음력 8월부터는 희생 짐승들의 살을 찌웠다. 한여름 밤하늘의 주인공이었던 직녀별이 서쪽으로 물러나면 이제껏 은하수 너머 대기하고 있던 문제의 별이 중천에 들어서고 그때가 바로 음력 8월인지라 희생 짐승들 살찌는 소리 들리기 시작하는 시점과 맞아 떨어진다. 그리고 직녀들 마냥 관리들도 음력 8월 밤하늘 중천의 별에다 자신들을 비추어 이름을 붙였으니 이로써 견우별이 생겨난 것이다(참조_류쭝디 산둥대 교수).  

 정리하자면, 여름에 직녀별이 중천에 있을 때 견우별은 동남쪽에 머물러 있고 가을이 되어 직녀별이 서쪽으로 물러가면 견우별이 중천 자리에 들 뿐 이 두 별 간 눈물 상봉의 가능성은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 직녀별과 견우별은 각각 겨울을 준비하는 여인네와 남정네의 상징일 뿐이요, 각자 길쌈하고 짐승들 치느라 바빠 죽을 지경임에 사랑타령 역시 언감생심이다. 어쩌다 별 이름을 붙이고 보니 하나는 여인네 이름이요 하나는 남정네 이름인지라 심심파적 삼아 삼류 로맨스 갖다 붙인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아무렴 정인절 하나 없을까 싶다. 당연히 있을 수 있다. 칠석에서 눈을 떼어 봄으로 눈길 돌리면 답을 찾을 수 있다. 바로 청명(양력 4월 5일경)이다. 농사 준비 시작에 무슨 연애할 겨를 있겠나 하겠지만, 일 년 중 가장 명랑한 때가 바로 이 때다. 겨울 끝물의 입춘은 여전히 추위를 머금고 있고 우수에는 비가 질척거린다. 경칩이 되어도 벌레만 난무하니 눈에 띄어 아름다울 바 없고 경칩이 지나서야 남정네들이 기운을 추스르게 된다. 이어서 춘분이 되면 비로소 코끝에 봄 냄새 달라붙고 청명될 즈음 드디어 봄이 완성되니, 여인네들은 살랑살랑 봄바람에 치맛자락 나풀나풀, 봄놀이 꽃놀이에 마음까지 팔랑팔랑해지고 남정네들은 불끈거리는 힘을 주체하지 못해 땅 가는 가래질 소리에 산천이 울린다. 한 마디로 젊은 남녀들 정분나기 좋은 때라는 것이다.

 가을 초입에 봄 타령하는 이유인즉 봄 시절에 닥쳐서 봄 축제 생각해 봤자 결국 다음 해로 기약할 수밖에 없으니 지금부터 내년 봄 청명절에 맞추어 우리 식 정인절 축제를 만들어 봄은 어떠한가 싶은 까닭에 그런 것이다. 초콜릿 팔아먹으려고 사탕 팔아먹으려고 짜장면 팔아먹으려고 만드는 어정쩡한 날짜놀음 대신 진정한 사랑 축제 판을 벌여보길 바래본다. 후손 증산에 애를 먹고 있는 요즘임에랴.

 / 글 = 최정철 서울시 한양도성문화제 총감독(『성공을 Design하는 축제실전전략』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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