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아름다운 말과 만날 때
정치가 아름다운 말과 만날 때
  • 송일섭
  • 승인 2018.08.09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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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리코 카루소(Enrico Caruso, 1873-1921)는 20세기 초 오페라 황금시대를 연 성악가다. 이다. 이탈리아의 가난한 집안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기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공장에서 기계공으로 일을 해야 했다. 그에게는 성악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지만, 가난 때문에 성악을 공부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마침내 그에게 개인 레슨을 받을 기회가 온 것이다. 그는 설레는 마음으로 강사 앞에서 최선을 다해서 노래를 불렀다. 그의 노래를 들은 레슨강사의 반응은 냉랭하기만 했다. 과연 무슨 말을 할까. 그는 사뭇 긴장하고 있는데 강사는 이렇게 말을 하고 만다.

“너는 성악가로서 자질이 없다. 네 목소리는 덧문에서 나는 바람소리 같다.”

그 순간 잉리코의 소중한 꿈은 무참히 찢기고 말았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실의에 빠진 아들을 지켜보던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어머니는 가만가만 다가가 아들을 꼭 껴안으며 이렇게 말을 건넨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할 수 있어. 너는 틀림없이 위대한 성악가가 될 수 있어. 엄마가 도울 게.”

어머니의 따뜻한 이 한 마디에 힘을 얻은 잉리코는 다시 시작한다.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그 결과 1894년, 그의 나이 스물한 살 때 나폴리의 첫 무대에 올랐고, 1902년 ‘몬테카를로’ 오페라 극장, 런던의 ‘코벤트가든’왕립 오페라 극장, 그리고 그 이듬해는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극장에서 그의 실력을 한껏 발휘한다. 그 후, 그는 주연 테너가수로 만607회나 출연하면서 그의 꿈을 완벽하게 이루어냈다.

칭찬의 말, 아름다운 말이 어찌 아이들에게만 필요하겠는가. 일터에서 동료들 사이에도, 오다가다 마주치는 낯모르는 우리 이웃들에게도 필요하다. 그것뿐이겠는가. 저 높은 자리에 앉아서 ‘국민의 심부름꾼들’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도, 심지어는 이해를 달리하는 이 땅의 수많은 반대파들에게도 필요하다.

마그마의 열기 같은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7월 23일, 우리는 또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과 마주했다. 필자는 노회찬이라는 정치가를 만난 일이 없지만, 그의 놀라운 비유와 서민적 매력을 좋아했다. 드루킹 관련 특검수사에서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의 정치적 행보가 어떻게 될까 궁금해 하던 차에 비보가 전해진 것이다.

온 국민은 비탄에 빠졌다. 정파를 달리하는 수많은 정치인들이 조문에 나섰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은 시민들이 조문하는 것을 보며, 그의 삶의 궤적을 다시 보게 된다. 노동자와 농민, 약자와 소수자의 권익을 지켜주기 위해 누구보다 투철했던 신념을 다 펼치지 못한 것은 애석한 일이다. 국회의 ‘문지마 특수활동비’를 스스로 반납하며 쏘아올린 국회개혁도 아쉽기만 하다. 그의 잘못과 실수를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그가 이루고 싶은 꿈이 중단된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그보다 열 배 천 배 큰 죄를 짓고도 아등바등 기를 쓰고 있는 사람이 가득한데,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느냐며 원망하는 국민들도 많았다.

온 국민의 애도 속에서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한 정객이 그의 SNS에 올린 내용이 또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자살은 또 하나의 책임회피라며 ‘자살이 미화되는 세상’은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 번 더 오금을 박듯 몰아치는 그의 냉랭함에 할 말을 잃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은 “누구도 그의 죽음을 미화하지 않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상황에 대해 공감하고 마음 아파했을 뿐”이라는 반박에 공감했다.

이 대목에서 왜 하필 “네 목소리는 덧문에서 나는 바람 소리 같다.”고 일갈한 레슨강사가 떠오를까. 잉리코 카루소가 그의 말을 기억하고 받아들였다면, 그는 절대로 세기의 성악가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왜 또 아픈 가슴에 못을 박듯 비수 같은 말을 했을까. 안타까운 죽음 끝에 ‘자살 미화’ 논쟁을 불러일으킨 심술이 꼴사나울 뿐이다. 듣다 못한 김병준 자유한국당비상대책위원장은 정치가는 ‘아름다운 말’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사람들의 가슴으로 스미는 말을 못하면서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얻어 정치를 하겠다는 것인지 답답할 뿐이다. 아무리 힘들고 거친 세상이라 하지만 상대방의 감정부터 꼬이게 해 놓고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인가.

잉리코가 어머니의 따뜻한 말씀에 귀를 기울인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레슨 강사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포기했더라면 역사는 결코 ‘세계적인 성악가’ 잉리코 카루소를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힘이 되고 약이 되면 말, 칭찬과 소통의 위대성을 다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송일섭 (시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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