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왕후의 신행길
허왕후의 신행길
  • 이창숙
  • 승인 2018.08.05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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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34>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릉
 연일 쏟아지는 불볕더위 속 폭염으로 지친 사람들, 에어컨에만 의지하는 우리 사회는 더욱더 열기를 느껴야만 한다. 과학이 미치지 못했던 과거 인간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겸손함을 가졌지만 현대인들은 제사를 지낼 형편도 못된 듯하다. 자연 앞에 무기력함인지 하늘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기 때문인지……. 빨리 가을이 오길 기다릴 뿐이다.

  한여름에 열리는 거리의 축제들도 연기되고 있다. 본래 축제는 제의(祭儀)에서 비롯되었지만 지금은 다양한 형태와 스토리로 재해석되고 있다. 얼마 전 차의 기원설과 관련된 ‘허왕후 신행길’ 축제도 7월 말에서 8월 말로 연기되었다. 김해시와 주한인도대사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해마다 열리는 문화행사이다. 올봄에는 허왕후 사당이 있는 중국 사천성 안악현 서운향에서도 한국의 차 단체와 그곳 마을 사람들이 함께 다례를 올렸다고 한다. 허왕후와 수로왕이 맺어진 이야기가 차 축제와 다례의식이라는 문화콘테츠가 되었다.

  허황옥(許黃玉, 33년~189년)은 가야의 수로왕비(首露王妃)이다. 그녀는 아유타국의 공주로 오빠 장유화상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과 결혼예물을 실고 48년 가야에 도착했다. 수로왕과 혼인을 하여 거등왕을 비롯해 아들 10명을 낳았다. 그리고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 허황옥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는 다양하다. 아유타국의 공주, 제의를 담당하는 무녀(巫女), 가락국을 왕래하는 상인 설에 이르기까지 여러 측면에서 연구되었다. 그중에 아유타국의 공주라는 설이 널리 인정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된 『가락국기』의 기록이 뒷받침한다.

  허왕옥이 가락국에 도착하여 말하기를 “저는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입니다. 성(姓)은 허(許)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 본국에 있을 때 부모님들 꿈에 상제(上帝)께서 ‘가락국왕 수로(首露)는 하늘이 내려보내 왕위에 올라 신성스러운 사람이다.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공주를 보내 그의 배필을 삼게 하라’라고 하셨다. 그래서 저는 배를 타고 떠났는데 수신(水神)이 화를 내 갈 수 없게 되자 다시 돌아가 파사석탑을 배에 싣고 무사히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이 말에 수로왕은 대답한다. “짐은 나면서부터 신성하여 공주가 멀리서 오고 있음을 미리 알고 있었소. 신하들이 왕비를 들이려는 요청이 있었으나 허락하지 않았소. 이제 현숙한 아내가 이르렀으니 다행이오.” “드디어 혼인하여 이들은 밤과 하룻낮을 지냈다. 그리고 그들이 타고 왔던 배는 돌려보냈다. 뱃사공들 모두 15명에게 각기 쌀 10석과 포 30필을 주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가져온 물건 중에는 진귀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중에 차 씨가 있어 김해지역에 차나무가 전파되었다는 차의 기원설이 있다. 이는 하나의 전설이지만 그녀가 가져왔다는 차 씨는 결혼예물인 봉차(封茶)로서 상징성을 지닌다. 본래 차나무는 한곳에 뿌리를 내려 옮겨 심으면 죽는다. 이에 차씨는 백년해로(百年偕老)와 절개를 의미한다.

  본래 아유타국은 인도 남동쪽 아요디아 이다. 1세기에 북방 월지족 세력이 토착세력과 결합하여 지배층들이 쫓겨난다. 이들은 사천지방에 정착하게 된다. ‘보주태후 허씨릉’의 보주는 사천성 안악현의 옛 지명으로 인류학자 김병모에 의해 허황옥이 안악현 서운향에 살았음이 밝혀졌다. 그의 조사에 의하면 서운향에는 암벽 앞 작은 우물이 있었는데 암벽에는 신정(神井)이라고 음각되어있었다. 내용을 보면 “허씨 족은 일찍부터 이곳에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집 뒷산은 사자와 같고 앞뜰은 비단과 같았다. 바위 아래 우물이 있어 맑은 물이 넘쳐흘러 긷는 즉시 가득 차 큰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 동한 초에 허황옥이라는 소녀가 있어 용모가 수려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의 이야기 듣기를 좋아 했다.”는 내용이 있다. 허황옥과 관련된 전설은 연구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기록되고 있다.

 / 글 =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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