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인간·사회·정치가 이 이상 부패·타락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사회·정치가 이 이상 부패·타락할 수 있을까?
  • 이규하
  • 승인 2018.08.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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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의 글은 좀 나아진 오늘의 러시아가 아니라 필자가 얼마 전 교육부의 지원으로 자유베를린대학에서 독일 통일 연구하기 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의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러시아가 겪은 역사적 과정의 고통은 고르바초프(M. Gorbachev)의 언급에서 잘 입증된다. 고르바초프는 “러시아가 매우 오랫동안 독자적인 길을 걸어온 민족으로, 혁명을 통해 70년 동안 수백 년의 역사 과정을 달성함으로써 반식민지·반봉건제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나 앞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라고 러시아의 실상을 표현한 바 있다. 

  이 같은 비참한 현상의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선진산업국가와 비교해 보면 다름 아닌 생산 면에서의 비효율성, 제품 질의 저하, 과학기술 낙후, 첨단기술 결여 등이었다. 이에 더하여 총체적 생산만을 목표로 하여 고도의 기술을 제품 생산에 이용하지 못했고, 다른 선진국가와는 달리 국가의 재산을 증대시키는 대신 원료·노동력·노동시간을 비싸게 파는 데 급급함으로써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질 수 없었고, 때문에 제품의 부족 현상을 초래했다.

  소련의 ‘사회주의 정책’이 완전한 고용과 기초적 생활의 보장에 주력한 결과 급증하는 주택 수요, 양질의 식품 개발, 효율적 교통수단의 개발, 의료봉사, 기타 발전에 따르는 제반 문제의 해결을 위한 기회를 잃고 말았다. 그래서 자원이 풍부해도 제품이 부족하고, 대곡물생산국이면서도 양곡을 수입해야 했으며, 혜성을 발견하고 금성에 정확하게 이르는 로켓기술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필요한 테크닉이 발전하지 못했고, 질이 형편없는 가정용구를 생산하는 등의 모순에 빠지게 되었다.

  또한 이념 면에서 보면, 새로운 이념과 시도에는 제동이 걸리고, 문제를 건설적으로 분석하는 대신 아첨과 추종이 권장되었고, 실제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여론이 무시되었으며, 천편일률적인 이론이 권장되는 대신 창조적 사고가 추방되었고, 자의적인 평가가 논의의 여지가 없는 진리로 받아들여졌으며, 사고의 발전과 창조적 노력을 위한 과학적·논리적 및 여타의 토의가 무력화되었다.

  이에 혁명시대, 제1차 5개년계획시대, 해방전쟁 및 재건시대의 열렬한 단합 정신은 사라지고 대신에 음주, 마약 남용, 범죄 행위가 증가될 뿐이었다. 오히려 비속함, 유치한 기호, 이념의 빈곤화를 가져다주는 그들에게는 생소하고 천박한 대중문화만이 강화되었다. 모든 것은 용서될 수 있었고, 기강이 무너지고 책임이 회피되었으며, 이를 은폐하기 위해 화려한 정치선전, 행사, 수많은 축제가 수도와 지방에서 거행되었다. 당 기구 또한 이 같은 부정적인 경향, 즉 태만, 특혜, 느슨한 기강에 대해 어찌할 도리가 없었을 뿐 아니라 많은 지도적 당원이 모든 감시와 비판 밖에 있었으며, 이 때문에 실수와 과오를 앞서 저지르게 되었다.

 행정 면에서 보면 눈감고 못 본 체하기, 부패·굽실거리기·아첨이 만연했으며, 권력 계층은 그들의 권한을 남용하고 비판을 억누르며 축재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공범자·막후조정자로 범죄를 일삼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절망의 와중에 탄생한 소련 공산주의의 말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첫째, 자연적 조건의 입장에서 볼 때 러시아의 대부분이 너무 추운 곳이라는 점 외에도 겨울이면 아침 늦게 해가 뜨고, 이른 오후에 해를 볼 수 없는 음울한 기후로 인간이 자율적·능동적·창조적으로 행동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본다.

  둘째, 러시아에는 전통적으로 두 개의 그룹이 있어 왔는데 하나는 러시아도 서유럽의 일부이므로 서유럽문화를 받아들여야만 조속한 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표트르 대제같은 ‘서유럽지향주의자들’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문화는 서유럽문화와 다를 뿐 아니라 독자적 발전 법칙이 있으므로 서유럽을 따를 필요가 없다는 ‘보수적인 자민족중심주의자들’이었다. 그런데 러시아 내의 친슬라브주의자들이 지배자가 된 데에서 서양의 합리적·객관적·보편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부패와 침체를 거듭하면서 비참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규하<전북대 명예교수·서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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